2021년 2월 3일 수요일

[범용기 제1권] (67) 평양 3년 - 셋째 딸 혜원이

셋째 딸 혜원이

 

숭상 둘째 해에 셋째 딸 혜원이 났다. 아침 출근 때에도 아내는 밥하고 설거지하고 아무 다른 기색이 없었다. 그런데 퇴근해 와 보니 갓난 애기가 옆에 누워 있었다. 빨간 피덩어리 - 생명이 주먹만한 몸을 돌고 있었다. 내게는 첫 애기나 마찬가지다. 위로 난 딸 둘은 날 때에도 자랄 때에도 참관을 못했으니 말이다.

아내는 웃는 얼굴로, 또 계집애라오한다.

내게는 계집애고 사내고가 문제인 것이 아니었다. 저 가냘픈 생명이 험한 세파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 해서 애처로웠던 것이다.

 

옆집에 사는 산파가 와서 애기를 받아주고 씻어주고 한 모양이다.

 

아내는 이름을 지으라고 한다. 그럴싸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서 한 주일을 공백으로 지냈다. 아내는 계집애라고 이름도 안 지어 주는 거요? 하고 토라진다. 그런 것도 아닌데 공연히 자격지심에서 그러는 것 같았다.

열심히 글자를 고르다가 결국 혜원(惠苑)이라고 했다.

3일이 지나 교회에서 방문 와 축복해 주고 아내도 사흘 만에 거뜬히 일어나고 애기도 잘 자라 백일을 넘겼다. 몸이 하얗게 탈태하고 아빠만 보면 방긋 웃는 것 같이 보였다. 여섯 달째부터는 아빠에게 안겨 밖에 나가려 든다. 나는 애기를 안고 모란봉 청류벽 송림 속을 거닌다. 단풍잎 같은 손으로 아빠 얼굴 만지고 뽀뽀하고 머리를 가슴에 파묻고 사근사근 조는 얼굴 그건 진짜 천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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