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3일 수요일

[범용기 제1권] (93) 간도 3년 - 아버님 모셔보고

아버님 모셔보고

 

나는 부모님을 내 집에모시고 살았으면 하고 평생 염원해 왔다. 극진히 대접하고 즐겁게 위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아버님은 산수(山水)와 풍류를 아시는 분이시라 보시는 명승마다 시흥이 솟구치리라 믿어졌다. 아버님 모시고 죽장망혜(竹杖芒鞋)[1]로 금강의 안팎 관동의 팔경을 편력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즐거워하실까 하고 나는 꿈꾸곤 했다.

 

아버님은 아직 건강하셨다. 그래서 나는 형님과 의논해 보았다. 형님은 단연 반대였다. 칠십 노인을 그런 치벽[2]하고 험한데 모시고 다닐 수 있느냐는 것이다. 혹시 객지에서 병환이나 나시면 어쩌자는 거냐? 그런 모험은 효도가 아니라 오히려 불효가 된다고까지 했다.

 

그런데 용정은 기차로 몇 시간 가는 고장이다. 내가 살림차린 다음해 단오 때였던가 아버님이 용정에 오신다고 기별이 왔다. 우리는 마중나가 모셔들었다. 말씀한 새 의장에 등사립()을 받쳐 쓰셨다. 아내는 세끼 고기반찬에 산해진미로 정성을 다했다. 내 집에 아버님 모신다는 게 그렇게 좋아서였다. 그러나 용정에는 구경할만한 데가 없다. 풍류없는 호지(胡地). 나는 중국서점이나 학교 도서관에서 한문으로 된 책들을 얻어다 드렸다. 단오날에는 해란강 쪽 공원이라는 고장과 씨름판 운동경기장 같은 데로 모셨다. 그러나 자신으로도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데가 없었다.

아버님은 한 일주일 계시고서 가시겠다고 떠나신다.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다시는 그런 기회마저 허락될 수 없었다.


[각주]

  1. 죽장망혜(竹杖芒鞋) - 대지팡이와 짚신이란 뜻으로, 먼길을 떠날 때의 아주 간편한 차림새를 이르는 말
  2. 치벽하다 외진 곳에 치우쳐서 구석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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