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3일 수요일

[범용기 제1권] (95) 간도 3년 - 식구들은 다시 『창꼴집』에

식구들은 다시 창꼴집

 

내가 서울로 떠난 다음에 아내는 얼마 동안 용정에 머물렀지만 용정집을 팔아야 서울서 거처를 마련할 수 있겠기에 용정 친구들에게 그렇게 부탁했다. 그때 돈 1500원인가 받고 팔았다. 아내는 식구들을 데리고 다시 창꼴집으로 갔다.

더군다나 그 동안에 혜원이 몹시 아팠단다.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지냈다. 그런데 나는 성경용어로 비몽사몽간이랄까 어느 날 잊을 수 없는 비전을 보았다. 나는 어떤 큰 개천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그 다리 중간이 끊어져 있었다. 저쪽 켠에서 혜원이 아버지하며 아버지만 보면서 뛰어온다. 아차! 하는 순간에 끊어진 틈바구니에 빠진다. 나는 덥석 머리칼을 잡아 올렸다. 그래서 내 품에 안겼다. 나는 그 꿈 때문에 불안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서였다. 아내도 다른 식구들도 혜원이 아프다는 건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목숨이 걱정될 정도로 아팠던 것만은 사실이다. 어떤 결혼식에서 꽃 뿌리는 소녀 역할을 하고 추운 겨울에 잔치상 음식을 먹고서 식상[1]이 된데 이질[2]이 겹쳐 어린 몸이 아주 위독해졌다는 것이다. 동산병원에 곧장 입원시켰더라면 좋았을 텐데 수일동안 그대로 두었다는 것이다. 결국 병원에서 응급조치를 서두르고 특별간호로 몇 밤을 새워 계우[3] 생명은 건졌다고 한다.

그런 일도 있고 해서 아내는 부랴부랴 식구들 끌고 큰 집으로 갔다는 것이다. 큰집에서는 할아버지, 큰아버지, 큰엄마 모두 극진히 사랑해 주어서 아이들이 모두 기승해졌다.


[각주]

  1. 식상(食傷) - 소화불량으로 복통이나 토사 등이 일어나는 병
  2. 이질(痢疾) - 변에 곱이 섞여 나오며 뒤가 잦은 증상을 보이는 법정 전염병
  3. 계우 - ‘겨우의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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