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3일 수요일

[범용기 제1권] (96) 간도 3년 - 『만우』의 옥고 - 후일담

만우의 옥고 - 후일담

 

1937년엔가 만우는 수양동우회(국내에서의 흥사단) 사건으로 종로경찰서에 구금되었다. 늦은 가을이었다. 그때 나는 간도에 있었다. 일제가 한국에서 민족의식과 민족문화를 온전히 말살하려고 몸부림치던 때였으니만큼 안창호 선생 관계의 흥사단을 가만둘 리가 없었다. 이광수, 주요한, 한승인, 백영렵 등 수십 명이 구치되었다.

종로경찰서 유치장 음산한 세멘바닥에는 다 부서진 들창을 뚫고 초겨울 눈이 눈보라 되어 들이닥친다. 몸에 걸친 것은 때 묻은 여름 고이 적삼뿐이다. 밤낮 떨며 지낸 40일은 연옥에서도 밑바닥이었다고 만우는 말했다.

젊어서는 그까짓 것 했었는데 사십이 넘고 보니 천하 못할 일이었다만우는 술회하는 것이었다.

 

사모님이 면회하러 부산서 서울에 오셔서 그때 서울 어느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채필근을 찾아 갔었단다. 일자무식의 촌할머니가 면회절차를 알 까닭이 없었다. 채필근은 만우 형의 고향교회를 십년이나 목회한 목사였고 거기서 뽑혀서 선교부 장학생으로 일본 유학도 할 수 있게 된 사람이다. 일본 유학 중에도 만우와는 고락을 같이한 선후배였다.

그런데 채필근은 종시 외면하고 아는 체 하지 않았단다. 사모님은 울면서 거리를 방황하다가 어떤 이의 친절로 면회는 하셨다지만 만우는 그것이 그렇게도 노여웠던 모양이다.

죽은 순간에도 그것만은 용서할 수 없어하고 내게까지 다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누그러진 마음으로 성격이 비겁해서 그랬겠지 본심이야 뭐 그랬겠소? 잊어버리소했다.

만우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끝내 메스꺼운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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