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16일 화요일

[범용기 제2권] (103)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와 그의 “하야” - 한국교회의 태도

한국교회의 태도

 

이승만이 감리교인이고 반공주의자라는 것 때문에 한국 기독교계의 이승만 독재에 대한 태도는 극히 미온적이었다.

마치 콘스탄틴[1] 대제나 나타난 것 같이 기대를 걸고 있었다. 이승만은 일제시대에 고등고시에 합격하고 일제 정부에 고임받던 친일 수재들을 마구 고관에 등용했다.

이것은 미국의 친일정책이 이승만의 심장부에 침투된 치명적인 병균이었다는 평도 적지 않다.


[각주]

  1. 콘스탄티누스 1(Constantinus I, 272~337, 재위 306~337) - 흔히 기독교사에서는 콘스탄티누스 대제로 통칭하며, 동방 정교회는 모두 그를 성인으로 추대한다. 306725일 브리타니아의 요크에서 병사들에 의해 군주로 추대되어 죽는 날까지 로마 제국을 통치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첫번째 기독교인 로마 군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치세는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는데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에 대한 관용을 선포하여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끝내고 사실상 정식 종교로 공인했다. 또한 교회의 압류된 재산을 돌려 주고 이에 대한 국가의 보상을 정했다. 그는 또한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하여 기독교의 발전에도 기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324년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비잔티움을 새로운 로마(Nova Roma)’로 공표하고 330년 공식적으로 로마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 정하였다. 337, 그가 죽자 비잔티움은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라는 뜻의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개명했고, 세계 최초의 기독교 도시로서 이후 천 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로마 제국의 수도로서 존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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