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위 발기준비
한 달 동안 창립총회 준비에 바빴다.
발기인 명단, 취지문, 규약 작성, 부서, 부서별 인선, 고문 추천, 중앙실행위원명단 작성 등 준비 작업이 진행됐다.
우리는 이 투쟁위원회에 정계 원로들인 윤보선, 백낙준, 이인, 허정 등등 ‘어른’들을 참여시키려고 무던히 애썼다. 이철승과 나는 윤보선 씨를 아마 세 번쯤 찾아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3선개헌’이 ‘박’의 독재선언이란 것과 우리나라에서의 민주주의 사활의 분기점이란 것을 심각하게(well aware)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장준하’는 백낙준 씨를 몇 번이고 찾아가 절하고 호소했다지만 요지부동이었다 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법 하지만 아마도 기성 정치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지난날의 정적(政敵)이란 ‘악몽’이 따라다니는 것이 아닌가도 생각되었다.
장택상 씨만은 거의 임종을 기다리는 중환이면서도 쾌히 승낙했다. 그러나 며칠 후에 ‘고인’이 됐기에 그의 이름을 발기인 명단에 발표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1]
[각주]
- 1969년 7월 17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보면 발기인 명단을 보도하고 있는데, 총 329명으로 ‘윤보선’과 ‘장택상’의 이름도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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