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8일 월요일

[범용기 제2권] (35) 부산 피란 3년 - 항서교회당에 짐 풀고

항서교회당에 짐 풀고

 

이북 민주 시민의 남하, 서울 시민의 부산 피난은 일종의 민족 이동이었다. 기독교 신앙으로 본다면 ‘Exile’이라 하겠다.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생활과 비슷한 유형이다.

이번에는 미국 선교사들이 앞장서서 교직자와 그 가족과 신도들의 피난을 주선한다. 출발 날자와 운반할 기차도 미리 교섭하여 우리에게 통고한다.

어찌나 갑작스러웠던지 우리는 그야말로 허둥지둥하찮은 보따리 몇 개와 이부자리를 꾸려 들고 정거장에 달려갔다.

기차가 떠나기는 했지만, 가지는 못한다. 황소걸음[1]이다. 차 안에는 의자고 마룻바닥이고 짐 얹는 실겅[2]이고 없다. 모두 사람의 밀림이다. 기차 지붕 위도 사람으로 덮였다. ‘기차가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덩어리가 움직이는 것이었다.

너무 갑작스레 출발 명령이 내렸기에 금호동 식구들에게 알릴 틈도 없었다. 그러나 정거장에 나와 보니 그들도 나와 있었다. 맏딸 정자가 재빨리 손쓴 것이 아니었던가 싶다.

 

기차는 여전히 굼틀[3]거린다. 그러나 종착역까지의 스케쥴은 없다. 식사가 문제다. 길가 농가에 들어가면 보리밥일망정 아낌없이 준다. 쌀도 있기만 하면 선물로 주기도 한다. 빈집이 있으면 누워서 잔다.

대구에서 많이 내렸다. 그러나 부산행이 거의 전부다. 초량에서도 내린다. 우리는 부산까지 간다.

 

부산에서는 교회당을 피난민 수용처로 내놓았다. 우리는 김길창[4] 목사 교회 마루에서 숱한 선착(先着) 피난민틈에 끼어 하룻밤을 샜다. 며칠 있었다.


[각주]

  1. 황소걸음 황소처럼 느리게 걷는 걸음
  2. 실겅 - ‘시렁’(물건을 얹어 놓기 위해, 방이나 마루의 벽에 두 개의 나무를 가로질러 선반처럼 만들어 놓은 것)의 방언
  3. 굼틀 몸이나 그 일부를 구부리거나 비틀며 움직이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4. 김길창(金吉昌, 1892~1977) - 일제강점기 일본기독교 조선장로교단 경남교구장, 조선기독교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한 목사, 교육사업가, 친일반민족행위자. 1932년부터 1969년까지 37년 동안 부산 항서교회를 섬겼다. 동아대학 설립이사장(1945), 부산연합신학교 설립(1962)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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