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8일 월요일

[범용기 제2권] (38) 부산 피란 3년 - 인민군이 부산가까지 까지

인민군이 부산가까이 까지

 

공산군의 총반격에 밀린, 미군 일선 사령관 워커[1] 중장은 소위 성공적인 철군 스케쥴을 짜고 있었다.

자기부터 솔선수범한다는 뜻이었는지는 몰라도 그는 황급하게 찦차로 도주한다.

미국 군인의 희생을 덜기 위한 철군이었을 것이다. 그리고서 함포와 군용기로 무차별 폭격을 시도할 작정이었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그는 도망 중에 차 사고로 길바닥 시체가 됐다.

그때 나는 별로 하는 일도 없고해서 공연히 부산 거리를 헤매기도 하고 용두산[2]에 올라가 항도의 전경을 눈 아래 펴보기도 했다. 바로 눈앞에 대마도가 둥실 떠 있다. “대마도가 왜 일본 판도에 들어야 하나하고 혼자 분개하기도 했다.

나는 뉴스탐문에 열중했다. 신문은 모조리 사 들고 다닌다.

워커의 자리에는 릿지웨이[3]가 임명 됐단다. 나는 모르는 이름이었다. USIS[4]도서실에 가서 잡지들을 들춰봤다.

릿지웨이는 벌써 취임해 있었다.

그는 부하 장교들을 불러놓고 자기의 작전 계획을 피력했다.

나는 후퇴하러 온 것이 아니라 싸우러 왔다. 후퇴는 죽기보다 싫다. 여러분도 군인이니만큼 후퇴는 싫을 것이다. , 이제부터 우리 다같이 군인답게 싸워서 이기자!”

그리고 그는 그의 작전 방향을 제시했다.

김빠진 맥주 같이 시그러졌던[5] 장교들은 용기를 되찾았다. 사기가 드높았다.

릿지웨이는 한 동네, 한 고을씩 점령하는대로 적성 인물이나 부역자를 처리하고 질서를 세워 후환이 없게 한 다음에 다음 동네에 진군한다. 말하자면 깨끗한 청소작업이라 하겠다.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후방교란은 없다. 전라도에서 제일 많은 희생자가 났단다. 인민군이 낙동강 하류에서 도강하여 전라도 일대를 휩쓸어 통영까지 가는 동안에 살해된 민주 시민, 국군이 북상하여 전면 반격할 때 부역 또는 좌익 시민에 대한 보복 살해 등등으로 인명희생이 극심했다 한다. 그건 국련군의 직접 행위라기보다도 민간인의 격정과 악을 악으로 갚는보복 행위 때문이 아니었던가 싶다.


[각주]

  1. 월턴 해리스 워커(Walton Harris Walker, 1889~1950) -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미국 제8군 사령관으로 재임 도중에 교통사고로 순직하였다.
  2. 용두산(龍頭山) - 조선시대에 초량소산((草梁小山), 송현산(松峴山)으로 일컬어졌고, 1876년 부산항 개항 후에는 소산(小山 ), 중산(中山) 등으로 불렸다. 용두산이란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78년 일본 자료인 조선귀호여록(朝鮮歸好餘錄)에서다. 용두산 정상에 있는 용두산 신사는 신사참배를 강요한 1935년 이후 부산에서 일본인들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으며, 광복한 지 3개월이 지났으나 멀쩡하게 남아 만주에서 귀환선을 타기 위해 부산으로 모여든 일본인들의 집결소로 쓰이고 있었다. 19451117일 토요일 오후 6시 민영석(당시 36)에 의해 불태워졌다.
  3. 매튜 벙커 리지웨이(Matthew Bunker Ridgway, 1895~1993) - 워커 중장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에 후임 사령관으로 부임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전쟁상황을 유리하게 돌리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4. 주한 미공보원(United States Information Service)
  5. 시그러지다 사라지거나 없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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