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8일 월요일

[범용기 제2권] (42) 부산 피란 3년 - 피란 한신의 고장(Locus)

피란 한신의 고장(Locus)

 

전쟁은 언제 끝날지 요량[1]이 안 간다. 나는 피난지서 한신을 계속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김길창 목사 교회당에서 개강했다. 그러나 그 교회에는 교실로 쓸 작은 방들이 없다.

권남선 목사 말에 의하면 남부민동 권 목사 사택 길가 낭떠러지에 까마득한 높이의 석축을 위아래로 쌓아올리고 그 밑에는 공지 약 200평을 평평하게 고른 고장이 있다고 한다. 일인들이 설계한 것인데 지금은 적산이요 임대차 계약도 돼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근처 아낙네들이 인분을 더덕더덕 붓고 채소를 심어먹는 고장이란다. 시청과는 상관도 없는 무허가 경작이다.

 

우리는 그 고장을 신학교 기지로 쓰기 위해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임대료도 선납했다. 허가서가 나왔다. 우리 선생과 학생은 동네에서 삽, 곡괭이, 호미, 가래[2]들을 빌려 인분을 흙으로 덮기 시작했다. 아낙네들은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방해한다. 우리는 아무 대꾸도 안하고 말없이 작업을 계속한다. 아낙네들의 욕지거리가 하두[3] 심하기에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법대로 시청에 땅세 내고 이 땅을 빌렸으니 당신들이 불평이 있거든 시청에 말하시오.”

암만해도 잇발이 들 것 같지 않으니까, 아낙네들은 하나 둘 흩어진다. 그 후에는 아무 말도 없었다.

 

신학교 기지 아래켠 해변 가까이에 부산지구 계엄사령관이라나하는 김종원[4] 대령이 자기 집을 지었다. 그럴싸한 주택이다. 그에게는 호랑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다.

그는 명령쪼로 말한다.

신학교 사람들이 남의 주택 안뜨락[5]까지 볼 수 있게 됐으니, 학교를 딴 데로 옮기시오.”

신학교 기지는 법 절차대로 허락된 것이니 이제 옮긴 수는 없소마는, 댁의 안 뜨락은 보이지 않게 널빤지로 북쪽 가생이[6]를 둘러 막을테니 염려 마시오.”

 

그럭저럭 막지도 않고 그대로 지냈지만 별소리 없었다. 그의 권세도 추상낙일’(秋霜落日)이라 오래가지 못했다. 거창사건[7] 따위가 이엄이엄[8]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신학교에서는 정대위 목사가 학감[9]이고 박한진 목사가 경리과장으로 일했다.

정대위 목사는 외국어에 천재적 소질을 갖고 있었다. 우리말 이외에 일어, 중국어, 영어, 스페인어, 독일어, 불란서어 등등 아홉 나라 말에 능숙하다고 했다.

그는 미8군 군수품 책임자를 찾아가서 내버린 탄환 Box를 신학교에 무료로 넘겨달라고 했다. 허락됐다. 츄럭으로 남부민동 언덕밑까지 실어온다. 신학교까지는 오솔길 밖에 없기 때문에 학생, 선생이 총동원하여 개미떼가 메뚜기끌어가듯 한다. 정대위는 낡은 군용천막(Tent)도 십여 개 얻어왔다. 크기는 일정하지 않다.

남부민동 신학교 기지는 제일 큰 천막 하나로 메꿨다. 천막에는 칸막이 천이 붙어 있었다. 여학생 숙소, 남학생 숙소, 교무실, 사감실 등등이 칸막이로 구분된다. 출입구 옆이 교무실이다. 사감은 차보은 선생이었다. 이우정[10], 김영희 등 학부 여학생은 차보은 사감과 기거를 같이 했다.


[각주]

  1. 요량(料量) - 되질하여 용량을 헤아린다는 뜻으로, 잘 헤아려 생각함을 이르는 말
  2. 가래 흙을 파서 갈아엎거나 퍼내는 데 쓰는 기구
  3. 하두 하도의 방언
  4. 김종원(金宗元, 1922~1964) - 일제강점기 군인이자 해방후 대한민국 군인. 1948년 여순사건 발생 당시 진압에 나섰다. 1951거창민간인학살사건에 대한 조사를 방해한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으나 대통령 특사로 석방된 후, 경찰로 이직했다. 치안국장 재직 시절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1956928)의 배후로 밝혀져 파면 뒤 구속되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당뇨병으로 병보석(1961) 된 후 병이 악화되어 사망하였다.
  5. 뜨락 -
  6. 가생이 - ‘가장자리의 방언
  7. 195129일부터 11일까지 국군이 경남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서 비무장 민간인 719명을 학살한 거창민간인학살사건을 말함. 329일 국회에서 거창 출신 국회의원 신중목에 의해 사건의 진상이 폭로되었고, 330일 합동조사단이 구성되었다. 47일 합동조사단이 신원면으로 오던 중, 김종원 대령이 부하들을 공비로 위장 매복시켜 합동조사단의 접근을 방해하였다. 이로 인해서 김종원은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으나 대통령 특사로 석방된 뒤 경찰로 이직했다.
  8. 이엄이엄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가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9. 학감(學監) - 이전에, 학교에서 교육에 관한 사무와 학생들에 대한 감독을 맡아 하는 직책이나 그 직책의 사람을 이르던 말
  10. 이우정(李愚貞, 1923~2002) - 조선 16대 인조의 셋째아들 인평대군의 후손. 1940년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46년 조선신학원에 입학하였다. 1951년 한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로 유학하여 토론토 대학교 내 임마누엘 칼리지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1953년 귀국고 동시에 한신대 교수로 부임하였다. 이후 여성운동가, 기독교 페미니스트, 인권운동가로 활약하였다. 1970년 한신대 학원민주화운동에 가담했다가 해직되었고, 1980년대 후반부터는 통일운동에도 참여하였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 ‘31 민주구국선언문을 직접 낭독하기도 하였다. 1992년 대한민국 제14대 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장공김재준목사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2002)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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