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8일 월요일

[범용기 제2권] (43) 부산 피란 3년 - 교수와 직원의 숙소도

교수와 직원의 숙소도

 

정대위 목사는 8군에서 작은 천막들을 대여섯 채 얻어왔다. 물론 쓰다 버린 폐품이다. 쇠그물에 세루로이드[1]를 입힌 반투명한 대용유리도 얻어왔다. 그것은 천막 들창용이다. 한 천막에 마룻방 하나와 작은 부엌이 달렸다. 소꼽작난 같지만 우리에게는 대궐보다 더 요긴했다. 바로 가까운 동네에 구회영 장로가 살고 있어서 학생들에게 때때로 별식도 제공하고 교수와 직원을 자택에 초대하기도 하고 아주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도 주고 했다. 큰 위로가 됐다.

정대위 목사 어머니는 심한 당뇨병으로 누워 계셨다. 인슈링[2] 주사로 연명한다.

결국 세상 떠나셨다. 장례식은 신학교에서, 그리고 뒷산 봉우리에 안장했다. 비석을 세웠는데 어머니라고만 쓰여 있었다. 정대위는 시인이기도 했다. 후일에 수성암이란 부부합작 시집도 나왔다.[3]

 

국련군의 38선 돌파, 전면 반격의 성공 등 뉴스는 피난민의 사기도 고무했다.

일본에 피신했다가 부산에 돌아온 캐나다 선교사 스캍과 프레이저는, 원산, 함흥, 간도 등지에서 피난 온 옛 친구들을 모아놓고 이제부터 우리에게 우선적으로 요청할 사항이 무언지 말해 달라고 했다.

내게 꼬집어 묻길래 나는 교회와 사회의 지도자 양성이라고 말하고 캐나다 유학의 길을 넓게 열라고 요청했다. 그때 장학회라는 위원회가 있었다. 유학생 추천과 신청자의 심사를 선교사들과 함께 협의 결정하는 직책이었고 신애균[4], 정대위도 위원이었다. ‘이우정이 선정되었고 다음으로 강원룡도 허락되었다. 강원룡은 캐나다 위니펙에 있는 신학교로 가게 됐다. 이우정에게는 신약원어인 그릭전공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이우정은 토론토 대학에 적을 두게 됐다. Full Scholarship 이어서 왕복여비, 식비, 학비, 잡비, 서적비 등이 스칼라쉽에 포함되고 방학 동안에도 같은 액수의 장학금이 주어지기 때문에 [5] 얻는 일은 허락되지 않았다. 공부만 하라는 것이었다. 2년동안이지만 4년의 실력이 붙을만한 우대였다.

강원룡은 2년 후에 N.Y. 유니온에 옮겼다. 원래 수재인데다가 타고난 말솜씨와 지도력이 그를 돋보이게 했다.


[각주]

  1. celluloid : 셀룰로이드
  2. 인슐린’(insulin) - 동물의 이자에서 분비되어 포도당을 글리코겐으로 바꾸어 주는 호르면. 당뇨병이나 정신병 등의 치료에 쓰인다.
  3. 이주선ㆍ정대위, 수성암, 삼화출판사, 1973
  4. 기독교 사회운동가로서 한평생을 살다 간 신애균은 함흥 고등여학교 1회 졸업생으로서 모교재건위원회를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신애균은 재학시절부터 동급생들과 함께 나라를 위해서 몸을 바치자고 맹세, 매일 밤 12시 기도회를 갖는 등 민족주의적 성향을 드러냈다. 함흥 영생여고보를 졸업한 후, 1915년부터 여전도 운동에 헌신하였으며 함경북도를 중심으로 비밀결사대를 조직, 대한애국부인회의 지하운동을 주도해 3년 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후 여전도회 회장을 지내고 YWCA에서 활동했으며 자서전 <할머니 이야기>를 남겼다. 민중신학자 현영학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5. Job :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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