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5일 목요일

[낙수] 學窓餘祿(학창여록) - 새 良心(양심)의 創造(창조)

良心(양심)創造(창조)

 

신학지남163, 1934. 5.
장공김재준저작전집(5)한국신학대학출판부, 1971, 2, 15~18.
김재준전집(18)한신대학출판부, 1992, 1, 132~137.


()

모든 宗敎(종교) 가운데에서 우리 그리스도()처럼 良心(양심)重要性(중요성)高潮(고조)하는 宗敎(종교)는 아마 없을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은 거륵한 하나님 () 道德的(도덕적) 하나님이시매 우리도 거륵하여야 하고 道德的(도덕적)이라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靈魂(영혼)道德的(도덕적) 判斷(판단)主張(주장)하는 機關(기관)良心(양심)인 까닭에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良心(양심)()하여 그의 말씀을 들려 주시고 그의 빛을 비추어 주시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루터는 말하기를 하늘로 ()하는 길은 오직 良心(양심)의 한줄기 뿐이다하였고 칼ㆍ홀도 新敎(신교)良心(양심)宗敎(종교)라고 말한 것이다. () 하나님과 交通(교통)하는 것은 道德(도덕)何等(하등) 交涉(교섭)이 없는 어떤 이나 美的(미적) 印象(인상)()하여 될 것이 아니오 오직 良心(양심)()해서만 可能(가능)하다는 것을 高潮(고조)宗敎(종교)라는 말이다.

 

()

事實(사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良心(양심)具體的(구체적) 表現(표현)이였다. 그는 그의 ()(), 復活(부활)榮化(영화)()하여 하나님의 道德的(도덕적) 心情(심정)을 그대로 보여 주섰다. 그리고 聖神(성신)의 가장 큰 運動(운동)의 하나는 이미 이즈러진 良心(양심), 어두어진 良心(양심), 더러워진 良心(양심)을 다시 곤치고 다시 살려서 거륵한 하나님과 사귀는 길을 여러주는 그것이었다.

베드로가 逼迫(핍박)과 죽음을 눈앞에 보면서도 膽大(담대)하게 聖殿(성전) 뜰악에 서서 내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웨친 것도 聖神(성신)으로 말미아마 새로워진 良心(양심)忠誠(충성)態度(태도)였다. 네로나 도미시안 皇帝(황제) 때에 數十萬(수십만)基督敎徒(기독교도)가 죽엄을 앞에 놓고도 그리스도를 모르노라 말하지 않은 것도 良心(양심)의 소래가 죽엄보담 더 높은 것을 깨달은 까닭이였다. 루터가 法王(법왕)羅馬(라마)[1] 敎會(교회)勢力(세력)否定(부정)하는 論文(논문)을 쓴 다음에 내가 있는 괴로움과 手苦(수고)를 다하여 聖經(성경)을 상고했고 내 良心(양심)이 나의 오른 것을 證據(증거)해 주는 데야 내가 혼자서라도 法王(법왕)對敵(대적)하여 이러서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말한 것이라던지 레오 十世(10)[2]와 그의 法庭(법정) 앞에 불리여 가서 그의 發表(발표)論文(논문)들을 다 取消(취소)하라는 命令(명령)을 받은 때 내가 發表(발표)論文(논문)聖經(성경)과 서로 違反(위반)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이제 그것을 내 손으로 取消(취소)하는 것은 내 良心(양심)()許諾(허락)하지 않는다고 하며 여기에 내가 섰습니다. 나에게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오 하나님이여 나를 도으소서. -하는 悲壯(비장)祈禱(기도)로 끝을 막은 것이라던지를 본다면 그가 얼마나 良心(양심)의 소래에 忠實(충실)했던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한 것은 무엇을 意味(의미)한 것인가? 죽더라도 내 良心(양심)이 가리키는 길 以外(이외)에는 갈 길이 없다는 것을 意味(의미)한 것이 아닌가? 이때 소리없이 루터의 靈魂(영혼)에 속삭인 거륵한 良心(양심)의 소리는 왼 天下(천하)呼令(호령)하는 法王(법왕)의 소리를 집어 삼키고도 남음이 있었던 것이다. 스카틀랜드의 쫀ㆍ낙스[3]가 그러했고 英國(영국)의 크롬웰[4]이 그러했고 米國(미국)의 아브라함ㆍ링컨[5]이 그러했다. 그뿐이겠는가? 基督敎(기독교) 歷史(역사)()하여 보는 때 敎會(교회)柱石(주석)[6]이 되고 人類(인류)恩人(은인)()로서 良心(양심)의 소리를 有耶無耶(유야무야)[7]()한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참으로 新敎(신교)良心(양심)宗敎(종교)이니만치 良心(양심)이 어드워진 ()를 모셔들일 處所(처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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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리스도()生命(생명)宗敎(종교). 生命(생명)이란 것은 움직이는 것이오 자라는 것이오 周圍(주위)環境(환경)適應(적응)하는 ()도 있고 創造(창조)하는 힘도 있는 것이다.

그런고로 生命(생명)의 어떠한 特殊現象(특수현상)定義(정의)한다는 것은 마치 어린아이의 생각과 行動(행동)肉體的(육체적) 構造(구조)를 보고서 사람이란 이런 것이라고 斷案(단안)[8]을 내리우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이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해서도 그 時代(시대) 時代(시대)發展形態(발전형태)를 보고 그리스도()란 이런 것이라고 固定的(고정적) 定義(정의)를 내리는 것은 不可(불가)한 일일 것이다.

그것은 生命(생명)이니만치 偉大(위대)未來(미래)可能性(가능성)을 가지고 움직이며 創造(창조)하는 것인 까닭이다. 그런데 우리 信者(신자)가 하나님과 交通(교통)하는 唯一(유일)의 길인 良心(양심)은 곧 우리 道德的(도덕적) 生命(생명)最高(최고) 表現機關(표현기관)이다.

이것이 亦是(역시) 生命(생명)機關(기관)인 이상 그 時代(시대)民智(민지)[9]環境(환경)에 따라 그 形態(형태)를 달르게 하며 또 때때로 새 創造(창조)()하여 躍進(약진)할 수 있을 것은 勿論(물론)입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여기에서 良心(양심)이란 이런 것이라고 定義(정의)를 내리거나 良心(양심)內容(내용)은 이러하다고 說明(설명)하기를 ()치 않는다. 그리고 우리 信者(신자)가 어떤 時代(시대)에는 ()低劣(저열)良心(양심)標準(표준)自足(자족)했었다는 것을 구태여 나무렴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今後(금후) 社會(사회)支配(지배)良心(양심) 創造(창조)可能性(가능성)發見(발견)하고 그 良心(양심)內容(내용)()希望(희망)을 말함에 끄치고저 하는 바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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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조선)에 그리스도()가 들어온 結果(결과) 所謂(소위) 良心(양심)이란 것이 普遍的(보편적)으로 問題(문제)가 되며 道德生活(도덕생활)標準(표준)이 높아저서 ()에 독갑이[10]를 섬기던 이가 그것을 떨어내고 ()放蕩(방탕)하던 사람이 지금은 존절해지고 ()에는 拔一毛而利天下(발일모이리천하)라도 不爲(불위)[11]하던 ()가 지금은 다만 얼마라도 敎會(교회)社會(사회)()하여 받치게 되는 것이 다 聖神(성신)으로 말미아마 새 良心(양심)創造(창조)證據(증거)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거저[12] 이만침한 程度(정도)良心(양심)으로 所謂(소위) 社會(사회)道德的(도덕적) 指導者(지도자), 道德(도덕)建設者(건설자)가 될 수는 없는 줄 안다. 그러면 내가 希望(희망)하는 새 良心(양심)內容(내용)은 무엇인가? 첫째로 새 良心(양심)은 참된 意味(의미)에서 社會的(사회적)으로 覺醒(각성)良心(양심)이여야 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歐洲(구주)[13]에서 盛行(성행)하는 權威(귄위)中心(중심)으로한 빨트의 神學運動(신학운동)이나 英米(영미)에서 떠드는 宗敎經驗(종교경험)中心(중심)으로 한 뿍맨 運動(운동)이나가 가장 많이 敎人(교인)人氣(인기)를 끄으는 것은 事實(사실)이나 그네들에게 만일 크리스챤으로서의 社會的(사회적) 良心(양심)()全般的(전반적) 覺醒(각성)이 없다면 새 社會(사회)指導者(지도자)로서 完全(완전)資格(자격)을 가추웠다고 말할 수 없다. 아무리 有名(유명)神學者(신학자) 아무리 神祕(신비)宗敎經驗(종교경험)所有者(소유자)라도 만일 그가 巨萬(거만)[14]()()[15]()이면서 飢餓(기아)에 시달니는 할머니 거리에 헤매는 어린애에 ()한 거륵한 責任(책임)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러고 모든 繁榮(번영)背後(배후)에 숨어 흐르는 억울한 피를 볼줄 모른다면 그는 世界(세계)에서 살 새 良心(양심)所有者(소유자)라고는 말할 수 없다.

우리 크리스찬은 지금 斷然(단연)히 이 個人主義的(개인주의적) 生活原理(생활원리)에서 떠나서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대로 가난한 ()의 친구되며 눌린 ()의 노힘되고 ()()의 고침과 ()()()함과 ()()仲保(중보)가 되지 않고는 견듸지 못하는 社會的(사회적) 良心(양심)所有者(소유자)가 되여야 하겠다. 그리하면 우리는 우리의 社會(사회)가 어떠한 形態(형태)()하던지 도무지 念慮(염려)할 것 없고 恒常(항상) 社會(사회) 最高(최고) 良心(양심)表現機關(표현기관)靈的(영적), 道德的(도적적) 指導者(지도자)嚴然(엄연)히 설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여기에 ()한 참된 覺醒(각성)이 없고 다만 現狀彌縫(현상미봉)[16]汲汲(급급)하여 어름어름 지내간다면 우리 敎會(교회)는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아서 비가 오고 바람 불면 문허질 밖에 없으며 그 문허짐이 대단할 것을 豫感(예감)안할 수 없다.

다음으로 良心(양심)實際(실제)에 있어서 靈魂至上主義(영혼지상주의)()한 참된 覺醒(각성)內容(내용)으로 한 것이여야 하겠다. 우리 크리스챤에게는 ()이나 ()이나 에네르기가 價値判斷(가치판단)標準(표준)이 될 것 아니라 사람의 靈魂(영혼)이 곧 價値判斷(가치판단)唯一(유일)標準(표준)이여야 할 것인 까닭이다.

사람이 巨萬(거만)資産(자산)所有(소유)하였다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靈魂(영혼)을 좀더 아름답게 좀더 거륵하게 좀더 偉大(위대)하게 하는 데에 貢獻(공헌)한 바가 없다 할 것 같으면 그 巨萬(거만)()는 한 ()價値(가치)도 없는 것이란 말이외다. 그런데 우리가 萬一(만일) 우리의 가진 바의 다만 얼마라도 犧牲(희생)하면 暗黑(암흑)에서 헤매는 靈魂(영혼)에게 새 希望(희망)을 보여줄 수 있으되 그것을 하지않고 하지않으되 잘못이라고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良心(양심)所有者(소유자)가 아니외다. 우리 朝鮮(조선)이 가진 것이 거의 없으되 그래도 하나님께서 將來性(장래성)있는 젊은이들을 많이 주섰다. 그러나 우리가 이럭저럭 하는 동안에 그네들의 鵬翼(붕익)[17]을 꺾고 그네들의 駿足(준족)[18]을 억동여서 陋巷(누항)[19]에 썩게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돈 70()이나 80()을 잃어버린 때에는 너무 아까워서 가슴이 답답해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한 보배인 天才(천재), 偉大(위대)將來(장래)를 가진 靈魂(영혼)을 짓밟으면서는 아무 쓰라림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것은 새 社會(사회)에 살 새 良心(양심)所有者(소유자)는 아닌 것이다.

지금 어떤 나라에서 所謂(소위) 社會(사회)建設(건설)한다고 宏壯(굉장)히 떠들지만 만일 그 社會(사회)가 오직 機械(기계)같이 움직이는 組織體(조직체)이여서 그 ()人格(인격)尊嚴(존엄), 靈魂(영혼)高貴(고귀)容認(용인)할 곳이 없달 것 같으면 그것은 社會(사회)일런지 모르나 良心(양심)殿堂(전당)을 지을 곳은 못된다.


()

지금 우리 朝鮮(조선) 敎會(교회), 아니 全世界(전세계)基督敎(기독교)는 새 世界(세계)誕生(탄생)을 앞두고 苦勞(고로)[20]를 거듭하는 ()이다. 우리는 거저[21] 一時(일시)安逸(안일)()하여 因循姑息(인순고식)[22]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總力量(총역량)을 기우려 이 世界(세계)指導原理(지도원리)가 될 良心(양심)誕生(탄생)産婆役(산파역)을 맡어야 할 것을 切感(절감)하는 바이다. 어떤 이는 예수를 믿고서 正直(정직)하게 부즈런하게 존절하게 살았기 때문에 財産(재산)地位(지위)가 아울러 相當(상당)하게 되었으니 恩惠罔極(은혜망극)합니다고 기뻐한다. 그러나 여기에 만일 예수를 믿으므로 ()하여 그의 良心(양심)이 지극히 맑고 높아저서 그 良心(양심)의 소래에 忠誠(충성)되기 ()하여 가젔던 財産(재산), 가젔던 地位(지위) 모든 것을 여호와의 祭壇(제단) 앞에 불사른 이가 있다면 그이야말로 은혜받은 사람이며 새 社會(사회)主人公(주인공)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잃을지라도 하나님의 거륵한 ()으로 씻음을 받고 새로 지음받은 깨끗한 良心(양심)을랑 잃지 말자. 그리고 한층 더 나아가서 새 良心(양심) 創造(창조) 運動(운동)의 일꾼이 되자. 마음이 깨끗한 ()()이 있나니 저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23]눈은 몸에 등불이니 그런고로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오 눈이 흐리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니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운 것이 얼마나 어둡겠나뇨[24] 良心(양심)은 우리 靈魂(영혼)의 눈이오 우리 人格(인격)의 빛이다. 그것이 어두우면 내 몸이 어둡고 내 집 내 社會(사회)가 다 캉캄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로 ()하는 길이 막힐 것이다.

實利主義的(실리주의적) 見地(견지)에서 良心(양심)의 소리를 어물어물 점줄궈버리는[25] 일은 아야[26] 하지 말 것이다.

사람이 있어 이 良心(양심)을 버렸으니 그 믿음을 의론할진대 破船(파선)함과 같으니라(딈전 1:19)[27]


[각주]

  1. 羅馬(라마) - 로마
  2. 레오 10(1475~1521), 중세 종교개혁 당시 로마 교황(1513~1521)
  3. 존 녹스(John Knox, 1513~1572)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가
  4. 올리버 크롬웰(1599~1658) 영국의 정치가이며 군인. 1653년부터 죽을 때까지 호국경으로 영국을 다스렸다.
  5. 아브라함 링컨(1809~1865) 미국의 제16대 대통령(1861~1865)으로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노예제도를 폐지하였다.
  6. 柱石(주석) - 기둥과 주춧돌, 일정한 분야를 떠받들고 나아갈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7. 有耶無耶(유야무야) - 어떤 일이 있는 듯 없는 듯 분명하게 끝맺어지지 않고 흐지부지한 상태
  8. 斷案(단안) - 어떤 일에 대한 생각을 분명히 결정함, 삼단논법에서 전제로부터 미루어 얻은 결론, 옳고 그름을 판단함
  9. 民智(민지) - 국민의 슬기
  10. 독갑이 - ‘도깨비의 옛말
  11. 孟子曰 楊子取爲我하니 拔一毛而利天下라도 不爲也하니라 맹자가 말하였다. “양자는 자신을 위하는 입장을 취하여, 머리털 하나를 뽑음으로써 천하를 유익하게 한다 할지라도 하지 아니한다” [孟子 盡心章句 上 二十六章]
  12. 거저 - ‘그저의 방언
  13. 歐洲(구주) - 유럽
  14. 巨萬(거만) - 수만 단위로 셀만큼 매우 많은 돈의 액수
  15. () - 안다, 잡다, 지키다, 거느리다, 싸다
  16. 現狀彌縫(현상미봉) - 나타나 보이는 현재의 상태의 빈구석이나 잘못된 것을 임시변통으로 이리저리 꾸며 대어 맞춤
  17. 鵬翼(붕익) - 붕새의 날개, 앞으로 할 큰 사업이나 계획을 이르는 말, ‘비행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18. 駿足(준족) - 발이 빠른 훌륭한 말, 빠르게 잘 달리는 사람, 뛰어난 인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19. 陋巷(누항) - 좁고 지저분한 거리나 마을, 자신이 사는 거리나 동네를 겸손하게 이르는 말
  20. 苦勞(고로) - 힘들고 애써서 수고함
  21. 거저 - ‘그저의 방언
  22. 因循姑息(인순고식) - 낡은 습관이나 폐단을 벗어나지 못하고 눈앞의 편안함만을 취함
  23.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개역개정, 마태복음 5:8)
  24.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개역개정, 마태복음 6:22~23)
  25. 1971년판 장공김재준저작전집에 의하면 남겨버리는” (2, 18)
  26. 아야 - ‘아예의 방언
  27.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개역개정, 디모데전서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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