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4일 수요일

[낙수] 學窓餘祿(학창여록) - 先知者的(선지자적) 心情(심정)

先知者的(선지자적) 心情(심정)

 

십자군21, 1938. 2.
장공김재준저작전집(5)한국신학대학출판부, 1971, 2, 22~26.
김재준전집(18)한신대학출판부, 1992, 1, 143~148.


오라! 우리가 계교를 내여 예레미아를 빠지게 하자! 대개 제사장에게는 律法(율법)이 있고, 智者(지자)에게는 妙案(묘안)이 있고 선지자에게는 말슴이 있으니 이 모든 것이 없어진 것이 아닌즉 우리가 혀로써 저를 치고 그 모든 말을 듣지 말자!(예레미야 1818)[1]한 유다의 叛逆民(반역민)들은 우리에게 하나님 말슴 맡은 직분을 가장 밝게 보여주었다. 舊約時代(구약시대)에 하나님 말슴을 맡은 직분은 祭司長(제사장), 智者(지자)(賢人(현인)), 豫言者(예언자)(先知者(선지자))의 셋이였다. 그러기에 舊約(구약)司祭文學(사제문학), 智慧文學(지혜문학), 豫言文學(예언문학) ()은 다 이 各異(각이)聖職者(성직자)들이 걸어간 발자취의 記錄(기록)이다. 그러면 祭司長(제사장)의 한 일은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이미 啓示(계시)된 하나님의 말슴을 整理(정리)하고 敎理化(교리화) 條文化(조문화)하여 그것을 어떤 形體(형체)保全(보전)하려는 ()들로서 宗敎生活(종교생활)儀式的(의식적), 條文的(조문적) 方面(방면)을 맡은 ()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언제나 過去(과거)權威(권위)에서 사는 사람이였으며 따라서 새 말슴 새 生命(생명)이 나타날 때마다 그들은 늘상 그와 衝突(충돌)하며 그를 抑壓(억압)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이 習性(습성)이 마침내 그들로 하여곰 待望(대망)의 메시야를 十字架(십자가)에 못 박는 데까지 이르게 한 것이였다.

그러면 智者(지자)들이 한 일은 무엇이였는가? 그들은 過去(과거)啓示(계시)된 하나님의 말슴과 온갓 人間社會(인간사회)實情(실정)洞察(통찰)하여 거기에 숨은 어떤 原理原則(원리원칙)發見(발견)() 그것으로 現社會(현사회)實情(실정)適應(적응)指導理論(지도이론)을 삼으려는 ()들이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흔히 現實的(현실적)이오 哲學的(철학적)이었으나 ()의 사람은 아니였던 것었다.

그러나 先知者(선지자)는 그런 것이 아니였으니 祭司長(제사장)처럼 하나님 말슴의 條文化(조문화), 儀式化(의식화)로서 滿足(만족)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啓示(계시)根本精神(근본정신)()하고 그 儀文(의문)[2]을 버리려는 것으로 그 根本(근본) ()를 삼었었으며 智者(지자)들처럼 哲學的(철학적), () 實利的(실리적)으로 事物(사물)靜觀(정관)[3]함을 能事(능사)로 역인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의 새로운 啓示(계시)感激(감격)하며 그 받은 말슴으로 그 世代(세대)()한 하나님의 代言者(대언자)가 되었으며 同時(동시)에 그의 넘치는 靈感(영감)을 힘입어 未來世界(미래세계)의 메시아() 理想王國(이상왕국)을 미리 보며 기뻐한 것이였다.

宗敎生活(종교생활)에는 勿論(물론) 儀式(의식)條文(조문)必要(필요)하며 哲理(철리)謀略(모략)必要(필요)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祭司(제사)도 두시고 智者(지자)도 두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거륵한 生命(생명)潑溂(발자)[4]할 때에만 그 宗敎的(종교적) 價値(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이오 靈的(영적) 生命(생명)이 떠난 때에는 그 儀式(의식) 智略(지략)은 그대로 死骸(사해)[5]詭計(궤계)인 것이다. 그러면 그 聖生命(성생명)傳授(전수)하는 職分(직분)은 무엇인가? 그는 곧 先知者(선지자), 참으로 부름 받은 先知者(선지자), 使命(사명)에 붙잡힌 先知者(선지자)가 곧 그 사람이다. 그러므로 大祭司長(대제사장)이시오 最大(최대)智者(지자)이신 그리스도께서도 그 心情(심정)은 언제나 先知者的(선지자적)이었으며 先知者(선지자)系統(계통)을 이어 先知者(선지자)들의 바라고 기대리던 () 理想(이상)成就(성취) 實行(실행)하므로 그 事業(사업)目的(목적)을 삼으신 것이였다.

그는 진실로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로 권능이 많으신 선지자(24:19)[6]였으며 이스라엘을 구속할 ()(24:21)[7]이었던 것이다.

先知者的(선지자적) 心情(심정)! 이것은 그리스도의 心情(심정)이였음과 同時(동시)에 또한 크리스찬에 心情(심정)이여야 할 것이다.

 

先知者(선지자)!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사명을 받들어 하날[8] 권세로 하나님 말슴을 이 땅우에 宣布(선포)하는 하나님의 代言者(대언자)이다. 獅子(사자)가 부르지지매 누가 무서워하지 앓겠느냐? () 여호와께서 말슴하시매 누가 豫言(예언)하지 않겠느냐(3:8)[9]고 한 아모스의 告白(고백)은 그대로 先知者的(선지자적) 使命(사명)明示(명시)한 것이였다. 크리스찬아! 너는 하나님의 代言者(대언자)가 아니냐? 聖經(성경)에 씨여진 하나님의 말슴이 聖神(성신)感化(감화)로 네 心靈(심령)體驗(체험)되여 다시 世上(세상)宣布(선포)되는 때 너는 하나님 말슴의 代言者(대언자)이며 先知者(선지자)이다. 信者(신자)기도하고 말슴 ()하기에 專力(전력)을 다한(6:4)[10] 사도들의 代言者的(대언자적) 態度(태도)實行(실행)에 옮긴다면 그의 人格(인격) 獨特(독특)해지지 앓으며 그의 感化(감화)非凡(비범)하지 않겠느냐? 이 하나님의 말슴을 내 것으로 가진 ()天使(천사)審判(심판)(고전 6:3)[11] 權威(권위)를 가진 ()이니 하믈며[12] 世上(세상)일이랴! 그렇건마는 現代(현대) 우리 信者(신자)()에는 이 하나님의 豫言者(예언자), 代言者(대언자)로서의 高尙(고상)特權(특권)을 스사로 世俗化(세속화)하며 돈을 사랑하며 世上(세상) 權勢(권세)訶諂(가첨)[13]하며 道人(도인)心情(심정)을 더럽히고 그 權威(권위)를 잃어 마침내 맛 잃은 소곰[14]같이 바림[15]自取(자취)[16]하니 可嘆(가탄)할 바 아니랴!

 

先知者(선지자)! 그는 靈感(영감)(), 거륵한 感激(감격)에 사는 사람이였다. 여호와의 말슴이 ()하시매그 말슴에 感激(감격)하여 敢然(감연)히 선 사람들이 곧 옛날의 선지자들이였다. 末世(말세)에 내가 내 聖神(성신)萬人(만인)에게 부어 주리니 너의 子女(자녀)들은 將來(장래) 일을 말할 것이오 너의 젊은이는 이상함을 보고 너의 늙은이는 꿈을 꾸리라[17]한 요엘의 豫言(예언)聖神(성신)充滿(충만)感動(감동)으로 말미암아 永遠(영원)透視(투시)하며 幻像(환상)을 보며 大夢(대몽)에 사는 크리스찬을 그대로 豫言(예언)한 것이였다. 크리스찬의 生活(생활)! 그는 곧 感激(감격)生活(생활)이다. 크리스찬에게서 聖愛(성애)感激(감격)이 식어진 때 그는 곧 生命(생명)을 잃은 ()이다. 그가 眞實(진실)노 그리스도의 贖罪愛(속죄애)感激(감격)한 바 있었다면, 그는 그리스도를 ()하여 全存在(전존재)를 받치지 앓고는 견댈 수 없을 것이다. 聖神(성신)感動(감동)()는 그리스도의 救贖愛(구속애)體驗(체험)하는 것이며 이 지극한 사랑을 느낀 ()에게는 거륵한 熱心(열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 거륵한 熱心(열심)은 그로 하여곰 하나님과 사람을 ()하여 全存在(전존재)를 희생하지 앓고는 견디지 못하게 한다. 感激(감격)은 거륵한 感激(감격)이다. 거기에는 利害打算(이해타산), 權謀術數(권모술수), 分派作黨(분파작당) ()不純(불순)한 열심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神秘主義者(신비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徹頭徹尾(철두철미) 理性的(이성적)이며 道德的(도덕적)이다. 그에게는 熱心(열심)이 있다. 그러나 그 熱心(열심)傳道(전도)하는 열심과 사랑을 實踐(실천)하며 모든 善行(선행)을 예비하는 熱心(열심) 以外(이외)에 다른 아모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 敎界(교계)에는 이 거륵한 感激(감격)이 없어도 熱心(열심)으로 일하며 또 名聲(명성)을 나타내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의 熱心(열심)職業的(직업적)이며 그의 名聲(명성)은 그대로 그의 審判(심판)이 되는 것을 알어야 한다. 나는 이 職業的(직업적) 熱心(열심)이란 무서운 陷穽(함정)()하여 좀 더 說明(설명)義務(의무)를 느낀다. 만일 이 聖靈(성령)의 거륵한 感激(감격)이 없이 神學(신학)講解(강해)한다면 그 神學校(신학교)는 그야말로 牧使之法(목사지법)을 가라치는 職業學校(직업학교)는 될지언정 牧師(목사)養成(양성)하는, 거륵한 心情(심정)傳授處(전수처)는 아닌 것이다. 그러고 이 牧師的(목사적) 心情(심정), 先知者的(선지자적) 心情(심정)培養(배양)하지 못하고 다만 敎理(교리) 敎條(교조)敎派熱(교파열)敎界(교계) 處身術(처신술)이나 배워 가지고 나온다면 그 得業士(득업사)는 진실로 寒心(한심)得業士(득업사)임을 切感(절감)한다. 그들이 나와서 하나님의 聖役(성역)을 맡는 때 그 注入(주입)方法論(방법론)에 따라 熱心(열심)으로 일하여 많은 能率(능률)을 나타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所謂(소위) 불길은 굉장해도 뜨겁지는 않으며 雷聲(뇌성)은 굉장해도 雷光(뇌광)은 안 보인다는 세음으로 人格(인격)의 서로 부디치는, 生命(생명)感激(감격)이 거기에 있지 못한 것이다. 職業的(직업적) 熱心(열심)所有者(소유자)敎會生活(교회생활)外部的(외부적) 方面(방면)에 그 活動(활동)中心(중심)을 두는 것이다. 그는 敎會(교회) 機關(기관)增設(증설)熱中(열중)한다. 그는 大集會(대집회)를 열기 위하여 힘을 다한다. 그는 所謂(소위) 正統(정통) 敎理(교리)擁護(옹호), 異端(이단)排斥(배척)狂奔(광분)한다. 그러나 그는 참으로 悔改(회개)하고 全存在(전존재)()님께 바치려는 感激(감격)에 넘친 적은 무리의心情(심정)에는 ()興味(흥미)를 느끼지 앓는다. 生命(생명)躍動(약동)이 있어 그들의 固定(고정)方法(방법)制度(제도)에 들어맞지 않는 때면 그들은 온갓 術策(술책)으로 그 抑壓(억압)盡力(진력)한다. 結局(결국), 그들은 그들의 職業(직업)을 하나님보다 더 높이며 그들의 制度(제도)方法(방법)을 하나님의 心情(심정)보다 더 ()히 여긴다. 네비어쓰 宣敎(선교) 方法(방법)金科玉條(금과옥조)로 직히여 能率主意(능률주의)우에 建設(건설)朝鮮(조선) 敎會(교회)必然的(필연적)으로 到達(도달)할 곳은 이 職業的(직업적)」 「敎權的(교권적)이란 함정이 아닌가?

 

先知者(선지자)! 그는 大望(대망)에 사는 ()이다. 모든 先知者(선지자)들의 메시아 豫言(예언)은 곧 그들 所望(소망)記錄(기록)이다. 이와 같은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것이또한 우리 크리스찬의 心情(심정)이다. 그런데 이 所望(소망)이란 다만 그리스도께서 再臨(재림)하실 때 信者(신자)가 얻을 終末觀的(종말관적) 所望(소망)만 말한 것이 아니라 現實生活(현실생활)의 온갓 事爲(사위)에 있어서 언제나 落心(낙심)하거나 悲觀(비관)하지 않고 不滅(불멸)憧憬(동경)希望(희망)으로 不死身(불사신)() 生活(생활)을 계속하는 生活(생활)總括的(총괄적) 表現(표현)을 이름이다. 偉大(위대)所望(소망)偉大(위대)幻像(환상)을 보여주며 偉大(위대)幻像(환상)偉大(위대)事業(사업)成就(성취)케 한다. 안디옥교회의 다섯 先知者(선지자)에게 보여진 世界(세계) 傳道(전도)偉大(위대)幻像(환상)은 마츰내 사울과 바나바로 하여곰 그 千秋(천추)에 다시없는 偉大(위대)靈的(영적) 事業(사업)成功(성공)을 보게 한 것이였다. 그들에게는 環境(환경)問題(문제)가 아니였고 行路難(행로난)[18]問題(문제)가 아니었다. 유대()陰害(음해)異邦人(이방인)逼迫(핍박), 로마 市民(시민)들의 腐敗(부패)蠻人(만인)[19]들의 迷信(미신), 執權者(집권자)强壓(강압), 敎會(교회)分裂(분열), 內憂外患(내우외환)層生疊出(층생첩출)[20] 할지라도 그들은 오직 所望(소망), 所望(소망), 所望(소망) ()進軍(진군)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벌써 그 廣大(광대)한 로마의 全版圖(전판도)坊坊谷谷(방방곡곡)에 한울[21]을 뚫고 솟은 고직[22]()大敎堂(대교당)이 보이였으며 그들의 귀에는 가이사로부터 賤民(천민)에 이르기까지 上下(상하) 貴賤(귀천)이 다함께 禮拜(예배)에 모히라는 恩寵(은총)()소리가 明白(명백)히 들니였든 것이다. 바울은 로마의 獄中(옥중)에서 그 最後(최후)()하였으나 그의 幻像(환상)當時(당시)의 땅끝 西班牙(서반아)[23]城砦(성채)우에 十字旗(십자기)를 세우고 있었다(15:24, 28). 偉大(위대)所望(소망)五月花(5월화)의 적은 木船(목선)[24] 몰아 大西洋(대서양)의 거친 물결을 누르고 米大陸(미대륙)에 새로운 帝國(제국)을 세웠으며 멀리 暗黑(암흑)大陸(대륙)()하여 曉星丸(효성환)을 띄여 ()太陽(태양)이 첫 曙光(서광)을 빛나게 한 것이다. 지금 朝鮮(조선) 敎會(교회)의 문제가 무엇인가? 行路難(행로난)[25]問題(문제)가 아니라 偉大(위대)所望(소망)에 불타는 () 偉大(위대)幻像(환상)에 그 마음 뛰노는 () 있고 없음이 問題(문제)이다. 指導者(지도자)들이 보는 幻像(환상)地域的(지역적)으로 朝鮮(조선)을 넘지 못하며 敎派的(교파적)으로 自敎派(자교파)를 넘지 못하고 敎理的(교리적)으로 바리새(分離(분리)) 排他(배타)主義(주의)를 버서나지 못한다면 어느 밭에서 世界的(세계적) 指導者(지도자)가 자라나며 누구로 말미암아 敎派聯盟(교파연맹)運動(운동)이 일어나며 어찌하여 聖徒(성도)의 거륵한 交際(교제), 사랑의 聯合(연합)이 이루어지랴! 그 마음속에 거륵한 幻像(환상)을 품지 못한 ()로서 다만 敎條(교조)言論(언론)謀略(모략)材料(재료)삼어 自己中心(자기중심)職業的(직업적) 熱心(열심)에 마끼여 敎會事(교회사)弄絡(농락)한다면 그 結果(결과)必然的(필연적)으로 分爭(분쟁), 排擊(배격) ()惡德(악덕)을 비저낼 것이다. 이는 自己(자기) 營業(영업)繁榮(번영)을 위해서는 自然(자연) 競爭者(경쟁자)를 없이하고 自己(자기)가 그 權益(권익)獨占(독점)하려는 것이 職業(직업) 戰線(전선)原則(원칙)以上(이상), 그런 職業的(직업적) 熱心者(열심자)二人(이인) 以上(이상) 되는 때에는 반다시 거기에 分裂(분열), 抗戰(항전)이 있을 것인 까닭이다.

 

그러면 그 自體(자체) ()에 이런 憂患(우환)胚胎(배태)朝鮮(조선) 敎會(교회)가 이제 ()할 길이 무엇인가 첫재로 () 指導級(지도급)에서 絶對(절대) 謙遜(겸손)徹底(철저)悔改(회개)를 보여주어야 할 것은 勿論(물론)이다. 職業的(직업적) 自重(자중)」 「職業的(직업적) 驕慢(교만)」 「信仰的(신앙적) 自慢(자만)勇敢(용감)하게 버리고 宣敎師(선교사)로부터 一般(일반) 敎人(교인)에 이르기까지 재를 무릅쓰고 ()님 앞에 꿀어 엎대여 赦罪(사죄)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不純(불순)動機(동기), () 잘못된 方法(방법)으로 始作(시작)事業(사업)이 있으면 속임 없이 一般(일반)公開(공개)하여 그 是正(시정)天下(천하)()할 것이다. 그리하면 ()께서 () 그 크신 憐憫(연민)으로 우리에게 心情(심정)創造(창조)하시며 새 感激(감격)을 주실 것이거니와 그러지 않으면 갑작히 새 生命(생명)躍動(약동)期待(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고 둘재로는 第二世(2) 敎人(교인)들이 () 敎會(교회) 靑年(청년)들이 朝鮮(조선) 敎會(교회)로서의 世界的(세계적) 使命(사명)()한 깊은 自覺(자각)을 가지고 좀 더 偉大(위대)所望(소망)幻像(환상)에 살 수 있기를 祈願(기원)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全存在(전존재)를 바치여 ()를 위하여 큰 꿈을 꾸며 큰일을 計劃(계획)한다면 그 熱誠(열성)과 그 感激(감격)이 그대로 朝鮮(조선) 敎會(교회) 自體(자체)를 살리는 先知者的(선지자적)生命運動(생명운동)이 되여질 것이니 이를 생각할 때 마음이 뛰논다. 다만 엘닫과 메닫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으로 감동시키사 여호와의 백성이 전부 다 선지자 되는 것이 나의 원하는 바로라(11:26~29)[26]라고 한 모세의 大發願(대발원)[27]이 그대로 우리의 祈願(기원)이며 所望(소망)이다.


[각주]

  1.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책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어떤 말에도 주의하지 말자 하나이다”(개역개정, 예레미야 18:18)
  2. 儀文(의문) - 의식 절차에 대해 쓴 글
  3. 靜觀(정관) - 대상에 관여하지 않고 조용히 지켜봄. 무상한 현상계 속에 있는 불변의 본체적, 이념적인 것을 심안에 비추어 바라보는 것
  4. 潑溂(발자) - 발랄함
  5. 死骸(사해) - 죽은 몸의 형태와 뼈대
  6.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개역개정, 누가복음 24:19)
  7. 원문에는 (廿四廿一)로 되어 있음. 廿()이라는 한자는 스물을 가리킴.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개역개정, 누가복음 24:21)
  8. 하날 - ‘하늘의 방언
  9.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개역개정, 아모스 3:8)
  10.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개역개정, 6:4)
  11.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개역개정, 고린도전서 6:3)
  12. 하믈며 - ‘하물며의 방언
  13. 아첨(阿諂)의 오기인 듯
  14. 소곰 - ‘소금의 옛말
  15. 바리다 - ‘버리다의 방언
  16. 自取(자취) - 잘하든 못하든 자기 스스로 만들어서 취함
  17.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개역개정, 요엘 2:28)
  18. 行路難(행로난) -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매우 험하고 어려움
  19. 蠻人(만인) - 미개한 종족의 사람
  20. 層生疊出(층생첩출) - 일이 여러 가지로 겹쳐서 자꾸 일어남
  21. 한울 큰 나 또는 온 세상이라는 뜻으로, 우주의 본체를 가리키는 말
  22. Gothic(고딕) - 북한에서는 표기법의 차이로 고직이라고 한다. 1971년판 장공김재준저작전집에는 고딕으로 표현되어 있음(2, 25)
  23. 西班牙(서반아) - 스페인
  24. 메이플라워(Mayflower)호를 말함
  25. 行路難(행로난) -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매우 험하고 어려움
  26. 그 기명된 자 중 엘닷이라 하는 자와 메닷이라 하는 자 두 사람이 진영에 머물고 장막에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에게도 영이 임하였으므로 진영에서 예언한지라 한 소년이 달려와서 모세에게 전하여 이르되 엘닷과 메닷이 진중에서 예언하나이다 하매 택한 자 중 한 사람 곧 모세를 섬기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하여 이르되 내 주 모세여 그들을 말리소서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개역개정, 민수기 11:26~29)
  27. 發願(발원) - 신이나 부처에게 소원을 빎, 또는 그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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