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5일 목요일

[낙수] 學窓餘祿(학창여록) - 主日學校(주일학교) 敎師(교사)에 對(대)한 몇가지 進言(진언)

主日學校(주일학교) 敎師(교사)()한 몇가지 進言(진언)

 

☞ 『장공김재준저작전집(5)한국신학대학출판부, 1971, 1, 76~78. 19351027일로 기록되어 있다.
김재준전집(18)한신대학출판부, 1992, 1, 65~69.


이 글에 있어서 主日學校(주일학교)라는 것은 幼年主日學校(유년주일학교)를 말하는 것이오 主日學校(주일학교) 先生(선생)이라면 幼年主日學校(유년주일학교) 先生(선생)을 말하는 것으로 알어주기를 바란다. 大體(대체) 幼年主日學校(유년주일학교)라 하면 敎會(교회) 안에서 老熟(노숙)한 이들 보담도 젊은이들만이 하는 일인 줄로 알며 따라서 幼年主日學校(유년주일학교) 先生(선생)이라면 좀 엔간한 靑年(청년)이면 의례 할 수 있는 줄 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옛말마듸나 해줄 수 있으면 더 없는 資格者(자격자)인 듯이 생각하는 데가 적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第二世(2) 以後(이후)敎會(교회)란 것은 (宣敎師時代(선교사시대)敎會(교회)第一世(1) 敎會(교회)라고 한다면) 主日學校(주일학교)로부터 자라난 敎人(교인)이 그 會員(회원)의 거의 全部(전부)占領(점령)하고 있는 現狀(현상)으로 보아서도 主日學校(주일학교) 先生(선생)基督敎會(기독교회)未來運命(미래운동)左右(좌우)하는 가장 重要(중요)職分(직분)이라 않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그 ()에 있는 ()는 모름즉이 自重(자중)하여 그 要職(요직)萬遺漏(만유루)[1]없기를 ()해야 할 것도 事實(사실)이다.

國民敎育(국가교육)敎師(교사)一定(일정)期間(기간)修鍊(수련)()()로써 그 特殊(특수)職務(직무)()試驗(시험)通過(통과)하여야 되며 合格(합격)한 그들에게는 一定(일정)生活費(생활비)提供(제공)되어 있다. 그러나 主日學校(주일학교) 敎師(교사) 採用(채용)에 있어서는 이 모든 條件(조건)을 하나도 適用(적용)할 수 없는이만치 純然(순연)敎師(교사) 自身(자신)의 하나님을 ()한 뜨거운 愛情(애정)呼訴(호소)할 뿐이며 그 職務(직무)()修鍊(수련)敎師各自(교사각자)自發的(자발적) 準備(준비)依存(의존)할 밖에 없는 것이다.

國民敎育(국민교육)敎師(교사)들은 ()知識(지식)道德(도덕)傳授(전수)하면 그 責任(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主日學校(주일학교) 敎師(교사)宗敎(종교)傳授(전수)하는 것이 그 責任(책임)이니만치 知性(지성)이나 良心(양심)强迫的(강박적)으로 傳授(전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오 靈性(영성)()하여 그 全人格的(전인격적) 反應(반응)을 기다릴 밖에 없는 것이며 따라서 그 事業(사업)은 더욱 어렵고 專門的(전문적) 努力(노력)()하는 것이다.

國民敎育(국민교육)機關(기관)은 그 建物(건물)이나 그 目的(목적)達成(달성)하기에 거의 遺憾(유감)없도록 되여 있으며 敎授時間(교수시간)充分(충분), 敎材(교재)整頓(정돈) ()도 거의 完全(완전)에 가깝도록 準備(준비)되어 있다. 그러나 主日學校(주일학교)에 있어서는 敎會(교회) 建物(건물)敎室(교실)로서는 不適當(부적당)한 데가 거의 全部(전부)敎科書(교과서)準備(준비)되지 못한 工課(공과)요 가르치는 時間(시간)이라곤 一週日(일주일) 한번, 그것도 다만 二十分(20) 內外(이내)의 것에 不過(불과)하다. 그러면 國民敎育(국민교육) 보다도 數倍(수배)나 더 어려운 事業(사업)國民敎育(국민교육) 機關(기관)보담 比較(비교)도 안될만치 不備(불비)[2]現實(현실)에서 進行(진행)시키려는 主日學校(주일학교)()히 그 本來(본래)目的(목적)達成(달성)할 수 있을가? 여기에서 우리는 聖靈(성령)間斷(간단)없는 協助(협조)懇願(간원)함과 同時(동시)主日學校(주일학교) 敎師(교사) 各自(각자) 一大(일대) 奮發(분발)()[3]하는 所以然(소이연)[4]發見(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難局(난국)()主日學校(주일학교) 先生(선생)들에게 무엇을 要求(요구)하는가?

첫재로主日學校(주일학교) 先生(선생)은 무엇보다도 聖經(성경)을 알아야 되겠다는 것이다. 다만 工課(공과)에 나타난 斷片的(단편적) 聖經句節(성경구절) ()을 읽음으로 ()한 것이 아니다. 聖經(성경)歷史(역사)이기도 하며 文學(문학)이기도 하며 道德訓(도덕훈)이기도 하며 靈的(영적) 智慧(지혜)集成(집성)이기도 하나 이 모든 것 보담도 聖經(성경)靈感(영감)()啓示(계시)記錄(기록)이다.

그 뿌리와 줄기와 잎과 열매가 形形色色(형형색색)時代時代(시대시대)에 그 特色(특색)을 들어내였으나 그 中心(중심)()하여 全體機構(전체기구)를 살린 것은 하나님의 生命(생명)이며 中心生命(중심생명)聖經(성경)에서 感得(감득)()라야 비로소 聖經(성경)을 알기 始作(시작)()라 할 것이다. 이러케 聖經(성경)全體的(전체적)으로 깊이 吟味(음미)하기 ()해서는 聖經(성경) 그것만 읽는 것으로는 ()不足(부족)하다. 차라리 거의 不可能(불가능)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測光(측광, 싸이드 라잍)必要(필요)한 것이다. 聖經(성경)에 나타나는 事件(사건)이나 思想(사상)理解(이해)하기 ()한 그 當時(당시)地理(지리), 諸民族(제민족)歷史(역사), 文化(문화), 風俗(풍속), 習慣(습관), 聖經(성경) 構成(구성)來歷(내력) ()絶代必要(절대필요)學習題目(학습제목)이 되는 것이다. 多幸(다행)히 이런 學習(학습)()하여 日獨書院(일독서원) 發行(발행)基督敎敎程叢書(기독교교정총서), 基督敎(기독교)モノグラブ叢書(총서), イデア書院(서원) 刊行(간행)基督敎思想叢書(기독교사상총서) ()이 있어서 平信徒(평신도)聖經硏究(성경연구)에 크게 도움을 주고 있다. 이와 同時(동시)略註聖經(약주성경)을 읽고 그 趣味(취미)學習程度(학습정도)를 따라 더 仔細(자세)註釋(주석)을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둘재로主日學校(주일학교) 先生(선생)兒童(아동)()하여 알어야 되겠다는 것이다. 曾前(증전)[5]에는 兒童(아동)成人(성인)과의 差異(차이)는 그것이 ()差異(차이)()差異(차이)가 아닌줄 알었었다. 兒童(아동)이란 것은 成人(성인)보다 몸집이 적고 智力(지력)不足(부족)하고 思考力(사고력)未及(미급)[6]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우리는 兒童(아동)()하여 좀더 많은 知識(지식)을 가지고 있다. 兒童(아동)에게는 兒童(아동)獨特(독특)世界(세계)가 있음을 알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兒童(아동)世界(세계)에서 어떠케 생각하며 어떠케 느끼며 어떠케 行動(행동)하는 것을 알어야 한다. 그리하여 兒童(아동)世界(세계)에서 理解(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가르쳐야만 한다. 그러찮으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部門(부문)에 있어서도 兒童心理(아동심리)()著書(저서)不少(불소)[7]刊行(간행)되어 있음으로 硏究(연구)()充分(충분)히 열려있는 줄로 생각한다.

셋재로가르치는 技術(기술)을 가져야 된다는 것이다. 敎師(교사)도 다른 職場(직장)部門(부문)에서와 같이 한 技術者(기술자). 많이 아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과는 다른 問題(문제). 아주 豊富(풍부)學識(학식)을 가지고도 ()愚劣(우열)[8]敎師(교사)밖에 못되는 이가 많은 것이니 이는 그에게 가르치는 技術(기술)缺如(결여)한 까닭이다. 敎授時間(교수시간)敎師(교사)로서의 가질 수 있는 最大(최대)機會(기회)이다. 學生(학생)들 앞에 서는 그 時間(시간)敎師(교사)로서의 成敗(성패)()하는 瞬間(순간)이다.

主日學校(주일학교) 先生(선생)의 온갓 準備(준비)祈禱(기도)敎養(교양)은 또한 이 學生(학생)들 앞에서는 二十分(20)이나 三十分(30)()하여 存在(존재)한 것이다. 時間(시간)學生(학생)들의 心靈(심령)에 거륵한 感激(감격)決意(결의)를 이르키느냐 그러찮으면 그저 平凡(평범) 無爲(무위)하게 忘却(망각)世界(세계)에 밀려가 벼리고 마느냐가 決定(결정)되는 것이다. 내가 敎授(교수)熟練工(숙련공)으로서 내 敎材(교재)를 내 學生(학생)들에게 어떠케 하면 가장 有效適切(유효적절)하게 傳授(전수)할 수 있을까를 그 用語(용어), 順序(순서), 時間(시간), 重點(중요) ()()하여 마치 彫刻師(조각사)가 그 끌을 움직이듯이 遺漏(유루)[9]없이 熟考鍊鍛(숙고연단)해야 할 것이다. 이에 ()해서는 敎授法(교수법)()書籍(서적)을 읽는 것도 必要(필요)하지만 各自(각자)識見(식견)經驗(경험)不斷(부단)努力(노력)()熟達(숙달)이 더욱 必要(필요)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出鱈目(출설목)[10] - 되는대로 時間(시간)이나 채워버리면 그만이란 생각을 버리고 一絲不亂(일사불란)計劃下(계획하)에서 進行(진행)하려는 努力(노력)이 가장 緊重(긴중)[11]한 것이다.

[넷재로] 언제나 繼續的(계속적)으로 不斷(부단)努力(노력)하는 學徒(학도)가 되여야 하겠다는 것이다. 내가 이미 아는 것만으로도 고까짓 아이들이야 못가르치랴! 하는 心理(심리)로 지내는 敎師(교사)停滯(정체) 無活力(무활력)敎師(교사)가 되여 아모 感化力(감화력)도 없는 것이다. 工課(공과) 工課(공과)마다 참으로 準備(준비)해야 될 것이다. 有名(유명)敎育家(교육가) 토마스ㆍ아놀드博士(박사)는 죽는 그날까지 꾸준한 學徒(학도)였었다. 어느 때 누가 그에게 一生(일생) 게속하여 每日(매일) 가르치는 工課(공과)인데 무얼 그렇게 ()準備(준비)하느냐고 무를때 그는 그의 學生(학생)들이 썩기쉬운 갓친 물에서 마시지 않고 滾滾(곤곤)[12] 흐르는 샘줄기에서 마시게 하기 위함이라고 대답했다 한다. 진실로 모든 敎師(교사)()頂門(정문)一針(일침)이라 안할 수 없는 말이다.

聖經(성경)聖經(성경)()한 넓은 知識的(지식적) 背景(배경), 宗敎敎師(종교교사)로서의 不斷(부단)讀書(독서)思考(사고), 各工課(각공과)特別精密(특별정밀)準備(준비) () 傳授技術(전수기술)熟練(숙련) ()主日學校(주일학교) 先生(선생)으로서 具備(구비)해야 할 必要(필요), 不可缺(불가결)要素(요소)임은 以上(이상)에 말한바이어니와 이런 知識的(지식적) 準備(준비)에 아울러 적어도 自己班(자기반) 兒童(아동)()愛情(애정), 兒童(아동) 各自(각자)個性(개성)家庭(가정) () 環境(환경) 一切(일절)()關心(관심), 그들 靈性(영성)生長(생장)()不斷(부단)祈禱(기도) ()敎師(교사) 自身(자신)信仰生活(신앙생활)과 함께 또한 不可缺(불가결)心靈的(심령적) 修鍊(수련)이 되는 것이다.

이러케 敎師(교사)로서 一週日(일주일)에 단 三十分(30)이라도 自己(자기)最先(최선)을 다한 때 그는 다른 아모데에서도 얻을 수 없는 滿足(만족)喜悅(희열)을 느낄 것이다. 착하고 信實(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信實(신실)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맛기리니 들어와 네 主人(주인)의 즐거움을 누릴지어다하는 ()님의 칭찬은 먼 未來(미래)에서만 期待(기대)할 것이 아니라 그 即席(즉석)에서 어느 程度(정도)까지 體驗(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主日學校(주일학교) 先生(선생)! 그들의 손에서 未來(미래) 敎會(교회)興廢(흥폐)左右(좌우)되는 것임을 다시금 말하여 둔다. 그러고 그들의 硏究(연구)努力(노력)祈禱(기도)獻身(헌신)은 그들에게 맛겨진 兒童(아동)들을 ()하여 ()六十倍(60), ()百倍(100)收穫(수확)이 있을 것을 確信(확신)하는 바이며 따라서 그들의 榮譽(영예)天上天下(천상천하)에 빛날 것도 豫期(예기)하는 바이다. 一層(일층)[13]精進(정진)을 바란다.


[각주]

  1. 萬遺漏(만유루)없다 매우 치밀하여 한 가지도 빠짐이 없다
  2. 不備(불비) - 제대로 정리되거나 갖추어 있지 않음, 한문투의 편지 끝에 붙여 내용이나 격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리는 말
  3. (,) - 재촉할 촉, 악착스러울 착
  4. 所以然(소이연) - 그렇게 된 까닭
  5. 曾前(증전) - 일찍이 지나간 때
  6. 未及(미급) - 아직 미치지 못함
  7. 不少(불소)하다 수량이나 정도가 적지 않다
  8. 愚劣(우열) - 어리석고 못남
  9. 遺漏(유루) - 빠지거나 새어 나감
  10. 出鱈目(출설목) - でたらめ, 허튼소리, 엉터리, 터무니없는 짓, 아무렇게나 함, 거짓말
  11. 緊重(긴중)하다 꼭 필요하고 소중하다
  12. 滾滾(곤곤)출렁출렁 넘칠 듯하게, 물살이 세차게
  13. 一層(일층) - 일정한 정도에서 한결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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