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2일 월요일

[낙수] 學窓餘祿(학창여록) - 욥記(기)에 나타난 靈魂不滅觀(영혼불멸관)

 ()에 나타난 靈魂不滅觀(영혼불멸관)

 

신학지남153, 1933. 5.
장공김재준저작전집(5)한국신학대학출판부, 1971, 1, 15~20.
김재준전집(18)한신대학출판부, 1992, 1, 4~12.


()靈魂不滅(영혼불멸)信仰(신앙)明白(명백)히 나타나 있는가 없는가 하는 問題(문제)()혀 욥() 十九(십구)廿五(입오)[1]절노 27절까지에 있는 文句(문구)를 어떻게 解釋(해석)할 것인가 하는데 달린 것이다. 아직까지도 學者間(학자간)에 많은 異見(이견)이 있어서 確言(확언)하기 어려우니만치 斯界學徒(사계학도)[2]의 마음을 끄으는 題目(제목)의 하나가 되어 있다.

이제 히브리 原文(원문) 옴기는 것은 ()하고 最近(최근)에 된 英譯(영역)들을 찾아보면

 

맥파딘 (Mcfadyen)

“I know that there liveth a champion, Who will one day stand over my dust; Yea, Another shall rise as my witness, And as sponsor, Shall behold God;”

 

마퍁 (Moffat)

“Still, I know one to Champion me at last, to stand up for me upon earth, This body may break up, but even then my life shall have a sight of God;”

 

그레이, 뜨라이버 (Gray and Driver) 共譯

“But I know that my vindicator liveth, And hereafter he will stand up upon the dust, And

“And away from my flesh I shall behold God. Whom I shall behold on my side, And mine eyes shall see unestranged.”

 

떼비드손 (Davidson)

“And after my skin which is distroyed. This here, even without my flesh shall I see God : Whom I shall see

“And my own eyes behold, and not another’s;”

 

朝蘇譯(조선역)

내가 알거니와 나의 구주가 살아게시니 후일에 따우에 서시리로다. 나의 이 가죽이 썩은 후에 내가 이 육체를 떠나 하나님을 보리로다.”[3]

 

맥파딘은 키텔(Kittel)原本(원문)에 실린 附錄(부록)을 그대로 採用(채용)하여 極度(극도)自由譯(자유역)()한 것이오 그레이와 드라이버는 26절의 上半節(상반절)은 번역 不能(불능)이라고 아모[4] ()도 하지 않었고 마퍁은 自己(자기)解釋(해석)()意譯(의역)()하였고 데이비슨은 될 수 있는데 까지는 直譯(직역)()하였는데 미부사리[5](From or without my flesh)오리[6](my skin)結句(결구, Apodosis)取扱(취급)하였다. 그러나 다른 學者(학자)()에는 이것을 對照句(대조구, Antithesis)取扱(취급)한 이도 많고 또 어떤 이는 이 두 文句(문구)()肉體(육체)라는 것의 槪意的(개의적)[7] 表現(표현)으로 使用(사용)되었다고도 主張(주장)한다. 이것도 輕率(경솔)判斷(판단)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이보담도 더 微妙(미묘)한 것은 여기 있는 前置詞(전치사) 을 어떻게 번역할까 하는 것이다. 이 전치사는 영어로 ~, ~으로(From) ()으로 번역할 수도 있고, ~떠나(Away from)로도 번역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만일 前者(전자)()한다면 욥의 말하고자 한 것은 내 가죽()이 비록 썩어 없어진다 할지라도 그 남은 肉體(육체)로 하나님을 目賭(목도)하겠다는 것이 될 것이니 다시 말하면 現世(현세)에 살아 있는 동안 기어코 하나님을 뵙겠다는 것임에 靈魂不滅(영혼불멸)信仰(신앙)關係(관계)될 것이 ()노 없을 것이며 만일 後者(후자)()하여 ()을 떠나라고 번역한다면 그 反對(반대)事實(사실)意味(의미)한 것이 될 것이다. 떼비드손은 後者(후자)文章構成法(문장구성법)에 빛이여보아 前者(전자)보담 自然(자연)스럽다는 것을 力說(역설)하였고 其外(기외)에도 그린, 쉐인(Cheyne) 뜨라이버 ()이 그 後者(후자) () ()을 떠나하나님을 보리라는 ()을 하였다.

그린(Green)自己(자기)가 그렇게 번역한 內面的(내면적) 理由(이유) 두 가지를 들어 말하기를 (1) 욥은 처음부터 끝까지 自己(자기)는 무덤가에서 彷徨(방황)하는 ()自處(자처)하여 現世(현세)에서의 온갖 希望(희망)은 아주 없어진 것을 말하였으며, (2) 또 만일 욥이 自己(자기)信心(신심)()報應(보응)을 반다시[8] 現世(현세)에서 받어야만 된다는 것을 主張(주장)하였다면 그는 自己(자기)中軸(중축)되는 思想(사상)을 내여버리고 自己(자기)를 못견디게 구는 親舊(친구)思想(사상)을 따른 것이 된다라고 했다(Cheyne, “Job and Solomon” 34. Green, “Argument of Job” 204-5)라고 했다.

이런 것이 重要(중요)理由(이유)가 아닌 것은 아니나 그래도 아조[9] 首肯(수긍)할 수 없는 ()이 아직도 남아 있다. 爲先(위선)[10]原文(원문)意義(의의)依然(의연)[11]未分明(미분명)[12] 까닭에 누구나 다 前後(후자)文脈(문맥)을 보아 좋도록 解釋(해석)한 것임에 各自(각자)臆說(억설)[13]에 따라 그 結論(결론)을 달니한 것이며, () 떼비드손의 熟鍊(숙련)論文(논문)을 읽은 ()에도 우리의 마음속에서 疑礙(의애)()이 이주 살아지지 않는 것은 욥이 만일 이 句節(구절)에서 適確(적확)[14]靈魂不滅(영혼불멸)來世觀(내세관)告白(고백)하려고 한 것이었다면 왜 그가 가장 分明(분명)하고도 普通(보통) 쓰는 말 ()()對立(대립)시켜서 ()이 없어진 ()에도 내 ()으로 하나님을 뵙겠다고 하지 않고 그렇게 語塞(어색)한 말 ()()對立(대립)시켜서 내 가죽()이 없어진 ()에 내 ()으로(을 떠나) 하나님을 뵙겠다고 하는 未分明(미분명)表現(표현)을 했을까. 그도 亦是(역시) 傳統的(전통적) 信仰(신앙)黃泉說(황천설) 때문에(Doctrine of Sheol) 明確(명확)靈魂不滅(영혼불멸)來世觀(내세관)을 가질 수 없었든 것이 아닐가 하는 의심이 생기는 所以(소이)[15]이다.

勿論(물론) 욥은 現世(현세)에서 더 오래 살기를 期待(기대)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언제든지 그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덮이는 때 그는 極度(극도)不平(불평)落膽(낙담)表示(표시)하였으니 이는 그의 思惟(사유) 가운데 있는 ()이라는 觀念(관념)純然(순연)[16]現世(현세)()意味(의미)한 것이였든 까닭이다.

 

뵈틀에 북()같은 나의 날()들은

所望(소망)없이 끝막어 버림니다.

, 생각하소서 나의 ()은 입김같어서

다시 좋은날 봐올 길 없오이다.

…………

사라저 없어지는 구름같아오매

陰府(음부)에 나려갔다 올나올 길 없오이다(76, 7, 9)[17]

라 한 것은 그가 ()의 하염없음을 슲어한 나마지에 ()은 헛된 입김, 쓰러지는 구름같아서 소망도 없으며 다시 찾을 곳도 없다고 괴로운 탄식을 아끼지 않은 것이며

 

여인에게서 난 사람이란

사는 날은 짧고 괴롬은 만사외다.

꽃같이 났다가 또 시들어지며

그림자처럼 움즉여 ()함이없아외다(141~2)[18]

 

사람이 죽어 늙어지어

그의 마지막 숨결을 내쉰 때

그는 어대 있나있가

(그는) 물 없어진 바다

말나 붙은 골자군이외다(1410~11)[19]

 

이밖에도 그는 같은 意味(의미)의 괴로운 탄식을 많이 말하였으니 109~13절까지에는 人生(인생)이란 거룩한 土器(토기)장이의 손으로 비저맨든 한 조고마한 흙덩이에 숨과 생각과 ()을 넣어 놓은 것으로 結局(결국)은 다시 無意味(무의미)한 티끌가루로 돌아갈 밖에 없는 것을 원망스럽게 말했으며, 1328절에는 그의 生命(생명)이 날노 썩어저서 좀먹은 의복같이 떨어저가는 것을 괴로워하였으니 다 明確(명확)靈魂不滅(영혼불멸)來世觀(내세관)을 찾지 못한데서 생긴 괴로운 告白(고백)인가 한다.

그러면 욥은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 줄 믿었는가? 31~22절에 그는 自己(자기)의 난 날을 咀呪(저주)()에 죽은 ()平和(평화)로운 靜寂(정적)安息(안식)을 부러워서 이렇게 노래했다.

 

웨 무릎에 나를 받들었으며

웨 가슴이 나를 젖먹였든고

그러지 않었든들 지금에 나는

고요히 누어 平安(평안)히 잠잘 것을-.

…………

强者(강자)掠奪(약탈)을 끄치고

弱者(약자)가 마음놓고 있는 곳!

捕虜(포로)가 다함께 고요히 누어

看役軍(간역군)(()) 소래를 듣지 않는 곳!

()와 적은() 分間(분간)이 없고

奴隸(노예)主人(주인)에게서 노힘받은 곳!

, 하나님 왜 受難者(수난자)에게

빛을 주시나이까?

왜 쓰린 落望(낙망)에 있는 人生(인생)에게

삶을 주시나이까?(312~14, 17~20)[20]

 

여기에서 우리는 욥의 괴로운 ()讚美(찬미)를 듣는다. 靜寂(정적)安息(안식)으로 表現(표현)死者(사자)世界(세계)陰酸(음산)한 쉐올(Sheol)과는 조곰 다르다. 그러나 이것은 떼비드손이 舊約神學(구약신학) 479()에 말한 바와 같이 墓所(묘소)()死者(사자)肉體的(육체적) 狀態(상태)想像(상상)하여 詩的(시적)으로 着色(착색)한 것임이 分明(분명)하매 구태여 敎理的(교리적) 問題(문제)에까지 올닐 必要(필요)는 없는 줄 안다. 이밖에 다른 곳에서는 始終一貫(시종일관)하게 죽으면 陰府(음부, Sheol)로 나려간다는 것을 再言(재언)[21]()하지 않는 定理(정리)임 같이 말하였다. 이 쉐올은 暗黑(암흑)世界(세계), 陰酸(음산)混沌(혼돈)世界(세계), 거기에 빛외이는 빛이란 暗黑(암흑) 그것(14:21~ 22)이며 이 世上(세상)과의 關係(관계)는 아주 끊어지고(14:21) 거기서 나올 所望(소망)도 없는(10:21) 곳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리하여 우리는 욥의 來世觀(내세관)이 대체 어떠했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 그에게 있어서는 ()唯一(유일)實在性(실재성)은 오직 現世(현세)에 있는 것이오 死後(사후)에는 暗黑(암흑)混沌(혼돈) ()인 쉐올에서 이라는 말을 부치기에는 너무나 희미한 끈힘없이 늘어진 半意識(반의식)存在(존재)繼續(계속)하는 것 뿐이라는 것이다.

1413~15절에 그는 이 쉐올에서 버서날 때가 있을 것을 말하였으나 그 다음절 16, 22, ()19절로 22절에서 即時(즉시) 그런 希望(희망)不可能(불가능)한 것을 스스로 言明(언명)해 버렸다.

그러면 이런 思想的(사상적) 背景(배경)을 가진 욥에게서 明確(명확)靈魂不滅(영혼불멸)來世觀(내세관)을 찾을 수 있을까? 찾을 수 없다는 理論(이론)優越(우월)하다는 것은 아니나 거기에도 相當(상당)한 무게가 있음을 認定(인정) 안할 수 없는 줄 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욥의 來世觀(내세관)正當(정당)把握(파악)하려면 그의 思想(사상)全的(전적)으로 보아 그 곡절있는 움직임을 살펴야 할 것이다. 욥은 人生(인생)巡禮者(순례자).

그의 記錄(기록)冊床(책상)우에서 三段論法(삼단논법)으로 쌓아올린 論理(논리)殿堂(전당)은 아니었다. 차라리 人生(인생)曠野(광야)에서 길차자 헤매이는 눈물겨운 苦憫(고민)告白(고백)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變遷(변천)이 많고 矛盾(모순)自家撞着(자가당착)[22]도 많은 것이다.

死者(사자)의 고요한 安息(안식)을 부러워하든(3:14~19) 그가 死者(사자)世界(세계)인 쉐올의 暗黑(암흑)을 생각하고서는 몸부림치며 원망하였으며(10:21~22) 쉐올에서 다시 나오기는 絶對不可能(절대불가능)하다고 宣言(선언)하다 싶이한 그가(7:7~9) 하나님이 자기를 쉐올에서 불러낼 때를 기대리겠노라고(14:13~14)도 하였으며, 하나님은 苛酷(가혹)無道德(무도덕)한 이라고 원망하던 그가(9:22~24) 自己(자기)辯護(변호)해 주실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라고 그의 앞에 머리를 숙이기도 하였다(19:24~25).

이렇게 그는 安定(안정)없는 마음으로 이곳저곳 더듬어 헤매였다. 그러나 그의 품안에는 한 작은 羅針盤(나침반)이 있어서 그의 나아갈 方向(방향)을 멀니 가라치고 있었으니 그 바늘의 한쪽 끝은 하나님의 ()를 가라치고 또 한쪽 끝은 그의 良心(양심)潔白(결백)良心(양심)을 가라치고 있었다. 그가 길을 찾어 헤매이는 동안에도 이 바늘만은 항상 같은 곳을 가르치고 있었든 것이다. 하나님은 ()로우시다. 그리고 내 良心(양심)潔白(결백)하다. 그런고로 이 現在(현재)慘狀(참상)()하여 무슨 說明(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는 것이 그의 속임없는 心情(심정)이었다.

 

인저 그가 나를 죽이시리다. 내게는 소망이 없오이다. 그래도 나는 그의 앞에서 내 길을 변호하오리니 敬虔(경건)치 못한 ()가 그의 앞에 올 길이 없아오매 이것이 나에게 救援(구원)()가 됨이외다(1315~16)[23]

 

만일 하나님이 ()로우시다면 潔白(결백)한 사람을 無故(무고)埋葬(매장)해 버릴 ()는 없을 것이다하는 것이 그가 붙잡고 놓지 않은 가장 큰 眞理(진리)이였다. 信念(신념)이 그에게 暫間(잠간)이나마 쉐올에서 復活(부활)希望(희망)도 보게 하였으며(14:13~14) 아벨의 피가 땅을 적시인 때 하늘에 게신 證人(증인)이 이를 辯護(변호)해준 이야기를 聯想(연상)케 하기도 하였으며(16:18~ 19) 甚至於(심지어) 옛이야기를 싫고 고요히 서 있는 碑石(비석)呼訴(호소)할 생각도 나게 한 것이었다(19:23~24).

이렇게 受難者(수난자)倫理的(윤리적) 先後策(선후책)을 생각하고 있는 反面(반면)에 그보담 더 큰 問題(문제)가 그를 괴롭게 하였으니 () 大體(대체) 義人(의인)因苦(인고)까닭이 무엇인가, 無辜(무고)한 피가 땅을 적실 理由(이유)가 어디 있는가 하는 것이였다. 그의 理性(이성)은 이것을 判斷(판단)하기에는 너무나 局限(국한)되여 있었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과 直接(직접) 問議(문의)하기를 要求(요구)한 것이다.

 

나는 오직 全能(전능)한 이에게만 말슴들이렵니다.

나는 하나님과 변론하기만 바라고 있읍니다(133)[24]

 

이리하여 그의 問議(문의)懇願(간원)[25], 그의 探求(탐구)祈禱(기도)는 마침내 그를 피스가의 높은 ()우에까지 인도하였고 거기서 그의 오랜 懇求(간구)()確證(확증)世界(세계)展望(전망)하게 하였으니 곧 이번 硏究(연구)本題(본제)가 되어 있는 1925~27절에 있는 말슴이다. 거기에서 그는 (1) 하나님이 반듯이 그의 潔白(결백)한 것을 辯護(변호)해 주시리라 (2) 그가 틀림없이 그의 눈으로 하나님을 봐올 것이라 하는 두가지 偉大(위대)信仰(신앙)世界(세계)를 바라본 것이었다. 어느 때 어떻게 이것이 成就(성취)될 것인가 하는 것은 그에게 그다지 重要(중요)問題(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의 그의 生前(생전)成就(성취)되던 死後(사후)에 되든 또는 그가 普通(보통) 肉眼(육안)으로 하나님을 뵙던, 가족이 다 벗겨진 고깃덩이 몸으로 그를 뵙던, 復活(부활), 새로 지음받은 몸으로 그를 뵙던, 아주 ()에서 떠난 ()으로 뵙던, 이런 것은 그의 그다지 크게 關心(관심)한 바가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그가 참으로 나타내려고 한 것은 그야 살던지 죽던지 땅우에서의 하나님의 ()聖徒(성도)()한 하나님의 啓示(계시)는 반듯이 있어야 할 것이며 또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確信(확신)이였다.

스트란(Strahan)이 스멘드(Smend)()引用(인용)하여 말하기를 死後(사후)永遠(영원)生命(생명)()하야 욥은 明言(명언)한 바가 없다. 그의 생각한 生命(생명)回復(회복)이란 것은 그의 正義感(정의감)體現(체현)不過(불과)하다. () 現世(현세)에서 滿足(만족)을 얻지 못한 그의 正義感(정의감)이 그의 믿음의 目標(목표)가 되어 다시 나타난 것뿐이다라고 하였다.

事實(사실) 욥은 死後(사후)靈魂不滅(영혼불멸)()하야 똑똑하게 끊어 말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傳統的(전통적) 信仰(신앙)陰酸(음산)한 쉐올을 그는 더 많이 생각하고 있었든 것이다. 그러나 그의 强烈(강렬)正義感(정의감)은 이에서 滿足(만족)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는 희미하나마 새로운 世界(세계)를 바라보기 始作(시작)하였다. 이에 靈魂不滅(영혼불멸)偉大(위대)信仰(신앙)하나님의 ()라는 터전에 뿌리를 박고 욥의 潔白(결백)良心(양심)에 그 적은 싹을 도치였다. 마치 적은 상수리 나무 열매가 偉大(위대)將來(장래)可能性(가능성)을 품고 가시덤불 속에서 그 조고마한 싹을 도친 것 같이.


[각주]

  1. 廿(스물 입)
  2. 斯界(사계) - 이 분야나 방면의 사회
  3.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개역개정, 욥기 19:25~26)
  4. 아모 - ‘아무의 옛말
  5. ירִ֗שָׂבְּמִוּ֝ (우미브사리)
  6. ירִֽוֹע֭ (오리)
  7. 槪意(개의) - ‘내용의 개략적인 뜻
  8. 반드시의 방언(강원, 경기, 경상, 전라, 함남, 중국 길림성, 중국 요령성, 중국 흑룡강성)
  9. 아조 - ‘아주의 방언
  10. 爲先(위선) - ‘다른 것에 앞서서
  11. 依然(의연) - ‘전과 다름이 없이
  12. 미분명(未分明)하다 - ‘아직 분명하지 못하다
  13. 臆說(억설) - 상대방을 합리적으로 설득할 만한 충분한 근거 없이 억지로 펴는 주장이나 견해
  14. 適確(적확, てきかく 데키카쿠) - 국어에서는 的確(적확)이라고 표현한다. ‘조금도 틀리거나 어긋남이 없이 정확하고 확실하다.
  15. 所以(소이) - ‘어떤 일을 하게 된 이유
  16. 純然(순연)하다 - ‘다른 것이 조금도 섞이지 아니하고 제대로 온전하다
  17.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희망 없이 보내는구나 내 생명이 한낱 바람 같음을 생각하옵소서 나의 눈이 다시는 행복을 보지 못하리이다 …… 구름이 사라져 없어짐 같이 스올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개역개정, 욥기 7:6~7,9)
  18.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 그는 꽃과 같이 자라나서 시들며 그림자 같이 지나가며 머물지 아니하거늘”(개역개정, 욥기 14:1~2)
  19. 장정이라도 죽으면 소멸되나니 인생이 숨을 거두면 그가 어디 있느냐 물이 바다에서 줄어들고 강물이 잦아서 마름 같이”(개역개정, 욥기 14:10~11)
  20.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 그렇지 아니하였던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 자기를 위하여 폐허를 일으킨 세상 임금들과 모사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요 ………… 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서는 피곤한 자가 쉼을 얻으며 거기서는 갇힌 자가 다 함께 평안히 있어 감독자의 호통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거기서는 작은 자와 큰 자가 함께 있고 종이 상전에게서 놓이느니라 어찌하여 고난 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개역개정, 욥기 3:12~14, 17~20)
  21. 再言(재언) - 한번 말한 것을 다시 말함
  22. 自家撞着(자가당착) - 한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앞뒤가 서로 맞지 않고 모순이 됨
  23.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 경건하지 않은 자는 그 앞에 이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개역개정, 욥기 13:15~16)
  24.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개역개정, 욥기 13:3)
  25. 懇願(간원) - 간절히 바람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