羅馬(라마)의 監督(감독) 식스터스와 執事(집사) 라우렌스
- 主後(주후) 二五八年(258년) 殉敎(순교)
『장공김재준저작전집(전5권)』 한국신학대학출판부, 1971년, 제5권, 398~399.
『김재준전집(전18권)』 한신대학출판부, 1992년, 제7권, 250~251.
로마의 殉敎者(순교자)는 그 남긴 記錄(기록)이 甚(심)히 貧弱(빈약)한 것이 遺憾(유감)이다. 그러나 그 깨여진 조각 數三(수삼)[1]을 通(통)하여 지금은 주님의 면류관에 빛나는 그 完璧(완벽)[2]을 想像(상상)하기로 하자.
例(예)의 발레리안[3] 皇帝(황제)의 逼迫(핍박) 때 羅馬(나마) 敎會(교회)를 牧(목)한 이는 씩쓰터쓰[4] 監督(감독)이였다. 그는 希臘人(희랍인)으로서 아덴의 出生(출생)이였으며 敬虔(경건)한 牧師(목사) 仁慈(인자)한 司祭(사제)의 稱(칭)이 높았었다. 二五七年(257년) 八月(8월)에 强頸(강경)하기로 有名(유명) 스데반의 뒤를 이여 羅馬(나마)의 監督職(감독직)에 올은 그는 牧會(목회)한지 不過(불과) 一年(1년)만에 殉敎(순교)의 榮冠(영관)[5]을 얻게 된 것이다.
발레리안 皇帝(황제)의 第二回(제2회) 勅令(칙령)이 發表(발표)된 直後(직후)였다. 二五八年(258년) 八月(8월) 六日(6일) 씩쓰터스는 푸라에텍스타터스라는 私設墓地內(사설묘지내)에 監督(감독)의 椅子(의자)를 옴기고 거기서 敎人(교인)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는 그것이 私人(사인)의 構內(구내)니만치 조곰 덜 危險(위험)하리라고 생각한 까닭이였다. 그러나 이것을 探知(탐지)한 兵士(병사)의 一隊(일대)는 突然(돌연)히 侵入(침입)하여 그와 및 四執事(4집사)를 逮捕(체포)하였다. 「監督(감독) 司祭(사제) 及(급)[6] 執事(집사)는 即席(즉석)에서 死刑(사형)에 處(처)하라」는 것이 皇帝(황제)의 勅令(칙령)이였음으로 兵士(병사)들은 얼마 前(전)에 붓잡어낸 그 자리에 그를 도로 끌어다 앉히고 거기서 斬首刑(참수형)을 執行(집행)하려 하였다. 激昂(격앙)한 信者(신자)들은 決死(결사)하고 兵士(병사)들에게 抵抗(저항)하려 하였다. 그러나 씩쓰터쓰는 손을 흔들어 信徒(신도)들을 鎭定(진정)시키고 從容(종용)[7]히 자리에 나아가 가장 靜肅(정숙)한 가운데서 칼아래 그 머리를 맡기였다. 七執事(7집사) 中(중)의 네 사람도 그의 뒤를 따렀다.
다음으로 殉敎(순교)한 이는 저 有名(유명)한 라우렌스[8] 執事(집사)였다. 傳說(전설)에 依(의)하면 씩쓰터쓰 監督(감독)이 죽을 자리로 向(향)하여 나갈때에 라우렌스 執事(집사)는 뒤에 따라가며 『아버지여 당신께서는 祭壇(제단)으로 나가실 때 늘 저에게 도음을 命(명)하시지 않으섰습니까? 어찌하여 지금은 저를 데리고 가시지 않습니까?』 하고 부르짖었다한다. 그때 씩쓰터쓰 監督(감독)은 그를 도리켜보며 『내 사랑하는 아들아 오래지않아 더욱 榮光(영광)스러운 抗爭(항쟁)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 사흘 後(후)이면 너도 내 뒤를 따르리라』 하고 말하였다.
라우렌스는 首席執事(수석집사)로서 巨大(거대)한 敎會財産(교회재산)을 맡은 이였다. 一千五百(1천5백)의 寡婦(과부)와 不具者(불구자) 極貧者(극빈자)를 살리는 救恤機關(구휼기관)만해도 그 會計(회계)가 얼마나 巨額(거액)임을 알 것이다. 이 內容(내용)을 窺知(규지)[9]한 市長(시장)은 即時(즉시) 敎會財産(교회재산)의 上納(상납)을 命(명)하였다. 라우렌스 執事(집사)는 財産整理(재산정리)를 口實(구실)로 一日間(일일간)의 猶豫(유예)를 請(청)하여 許諾(허락)을 얻은 다음에는 곧 나와 會堂內(회당내)의 金銀器皿(금은기명)[10]과 裝飾(장식)을 沒數(몰수)[11]히 放賣(방매)[12]하여 貧者(빈자)에게 分給(분급)하고 다음으로는 敎區內(교구내)로 도라다니며 敎會(교회)에 依存(의존)하던 數千(수천)의 貧者(빈자) 不具者(불구자) 等(등)을 全部(전부) 會堂內(회당내)로 召集(소집)하였다. 約束(약속)한 날 市長(시장)이 財産引繼(재산인계)하러 敎會堂(교회당)에 들어올 때 그는 盲者(맹자) 啞者(아자)[13], 乞人(걸인) 病者(병자)의 一群(일군)을 가라치며 『자 이것이 敎會(교회)의 實物(사물)이외다』 하고 말하였다. 市長(시장)이 어느 程度(정도)까지 이 意味(의미)깊은 諷刺(풍자)를 깨달었는지를 알수 없으나 그 豪放(호방)에는 자못 興味(흥미)를 느꼈던 모양이다. 그러므로 그는 라우렌스를 斬首刑(참수형)에 處(처)하는 代身(대신) 좀더 殘忍(잔인)한 方法(방법)으로 그의 膽力(담력)을 試驗(시험)해 보려 한 듯하다. 如何間(여하간) 그는 숯불 우에 적쇠를 걸고 라우렌스를 굽기 始作(시작)하였다. 한참동안 말없이 누어 굽히든 그는 옆에 서 있는 形吏(형리)를 부르며 『인제 이쪽편은 다 굽혔는데 뒤집어 놓아야 저쪽편도 굽히지요?』 하고 말하였다. 믿음은 勿論(물론)이어니와 그 氣槪(기개)의 豪放(호방)함이 벌써 全(전) 羅馬(나마) 帝國(제국)을 倂含(병함)하고도 남음이 있었음을 볼수 있지 않은가? 그의 遺骸(유해)는 히폴리터스란 信者(신자)와 줄리안이란 司祭(사제)의 손으로 피버틴路傍(노방)에 埋葬(매장)하였다. 이밖에도 씩쓰터스 때의 殉敎者(순교자)가 百二十名(120명)에 達(달)한 모양이나 그 行蹟(행적)은 可(가)히 상고 할길이 없다.
史料(사료) 암부로스 어거스틴의 說敎集(설교집)에 斷片的(단편적)으로 引用(인용)된 것이 最初(최초)의 史料(사료) 그 正傳(정전)[14]은 五世紀(5세기) 中(중)의 作(작)임으로 口碑傳說(구비전설) 以上(이상)의 平價(평가)를 許(허)할 수는 없다.
- 數三(수삼) - 둘이나 셋 또는 넷 정도의
- 完璧(완벽) - 흠이 없는 구슬이라는 뜻으로, 결점이 없이 완전함을 이르는 말
- 발레리아누스 황제(Publius Licinius Valerianus ?~260) - 로마의 황제(재위 253~260)로 기독교 박해 정책을 강화하였으며, 카르타고 주교 키프리아누스와 로마 주교 식스투스 2세 등을 처형했다. 페르시아 원정시 붙잡혀 포로생활을 하다가 죽었다.
- 식스토 2세(Saint Sixtus II, ?~258.8.6) - 초대 로마 교회에서 가장 존경받던 순교자,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의 박해로 순교하였다.
- 榮冠(영관) - 쓴 사람의 영예를 드높여 주는 관, 영예로운 성공이나 승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及(미칠 급) - 여기에서는 및(그리고)의 의미로 쓰였다
- 從容(종용)히 – 차분하고 들뜨지 않아 찬찬하게
- 라우렌시오(Sanctus Laurentius, 225~258) - 초기 기독교 교황 식스토 2세 때 일곱 부제 가운데 한 사람으로 황제 발레리아누스의 박해로 순교하였다. 축일은 8월 10일
- 窺知(규지) - 엿보아 앎
- 器皿(기명) - 집안 살림살이에 쓰이는 여러 가지 기구
- 沒數(몰수) - 수량의 전부
- 放賣(방매) - 물건 따위를 내놓아 팖
- 啞者(아자) - 언어 장애로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
- 正傳(정전) - 정통적인 체계에 따라 씌어진 문학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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