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다시 살으셨나니
『십자군』 제1권 제3호, 1937. 9.
『장공김재준저작전집(전5권)』 한국신학대학출판부, 1971년, 제5권, 31.
『김재준전집(전18권)』 한신대학출판부, 1992년, 제1권, 114.
『어찌 산 者(자)를 죽은 者(자) 가운데서 찾느냐?』(누가 24:5)[1] 골고다 骸骨山(해골산)에 올으신 主(주)님은 骸骨(해골)에 삼킨바 되려함이 아니라 骸骨(해골)을 征服(정복)하려 하심이였다. 시내山(산)의 聖(성) 가다린 寺院(사원)을 보고 온 사람의 글을 읽건대 그 寺院(사원)의 地下層(지하층)에는 數百年來(수백년래) 거기서 죽은 修道僧(수도승)들의 骸骨(해골)을 貯藏(저장)해 두었는데 頭骨(두골) 따루 다리뼈 따루 팔뼈 따루[2] 마치 장작을 묶으듯이 여기 한 무덕이 저기 한 무덕이 가려 놓았다 한다. 진실로 骸骨山(해골산)이다. 近年(근년)에 와서는 그래도 監督(감독)의 頭骨(두골)만 따루 무뎌놓았다 한다. 로마 天主敎(천주교)에서는 너무나 十字架上(십자가상)의 예수를 凝視(응시)하는 남어지에 復活(부활)하신 榮光(영광)의 主(주)를 보지 못하는 弊(폐)가 많다. 骸骨(해골)아, 네 이김이 어듸 있느냐. 죽엄아 네 存在(존재)가 어듸[3] 있느냐! 이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는 靈(영)의 勝利(승리)를 좀더 徹底(철저)하게 깨닫자! 이 믿음이 確實(확실)치 못한 者(자)에게 殉敎者的(순교자적) 熱情(열정)과 覺悟(각오)를 求(구)하는 것은 마른나무에서 꽃이 피기를 바라는 세음이다. 主(주)여 우리로 하여금 참말 生命(생명)에 부듸치고 主(주)의 復活(부활)을 體驗(체험)하게 합소서.
[각주]
-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개역개정, 누가복음 24:5)
- 따루 - ‘따로’의 비표준어
- 어듸 - ‘어디’의 옛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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