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5일 목요일

[낙수] 斷想(단상)과 祈願(기원) - 變(변)치안는 說敎題目(설교제목)

()치안는 說敎題目(설교제목)

 

신학지남162, 1934. 3.
장공김재준저작전집(5)한국신학대학출판부, 1971, 5, 20~21.
김재준전집(18)한신대학출판부, 1992, 1, 100~101.


時代(시대)適應(적응)說敎(설교)를 하라는 것이 흔히 들리는 말이다. 勿論(물론) 說敎(설교)埃及(애급)의 건장된 屍體(시체)우에를 低迷(저미)[1]하고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福音(복음)使命(사명)恒常(항상) 새로워서 우리의 家庭(가정)實業界(실업계)政治界(정치계)에 살아 움즉이는 이 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講壇(강단)에서 論及(논급)[2]하는 現實問題(현실문제)說敎(설교)應用方向(응용방향)이요 ()코 그 本質(본질)이 아님을 알어야 한다. 이는 그 使命(사명)客格(객격)[3]이요 ()主格(주격)은 아닌 것이다.

우리가 講壇(강단)에서 現下(현하)政治的(정치적), 經濟的(경제적) 現狀(현상)言及(언급)할 수 있음은 勿論(물론)이나 이는 政治(정치)經濟(경제) 그것에 대한 論述(논술)이 아니라 靈的(영적) 眞理(진리)에 빛외여진 그것을 認證的(인증적)으로 ()함이다.

說敎家(설교가)()하는 時代(시대)에서 不變(불변)實在(실재)를 말하며 刹那(찰나)世界(세계)에서 永遠(영원)眞理(진리)를 말하는 것을 그 使命(사명)으로 하는 것이다. 永遠不變(영원불변)世界(세계)를 말하는 ()流轉(유전)[4]하는 現在(현재)事變(사변)에도 論及(논급)할 수 있음은 그 ()하는 바가 現在(현재)事變(사변)뿐 아니라 어느 時代(시대)事變(사변)에나 適用(적용)될 수 있는 말임으로써이다. ()하여가는 事變(사변)個別的(개별적)으로 말함이 아니라 모든 事變(사변)中軸(중축)()하여 흐르는 ()치안는 原理(원리)를 말하심이 그리스도의 說敎(설교)이였던 것을 記憶(기억)할 것이다.

어떤 說敎家(설교가)社會的(사회적) 福音(복음)을 말하기에 너무 熱中(열중)한 까닭에 社會(사회)만을 말하고 福音(복음)을 빼여버리는 일이 있다.

어떤 說敎家(설교가)政治(정치)經濟(경제)를 말하기에 너무 마음이 팔녀서 福音(복음)代身(대신)新聞(신문) 論說(논설)이나 政黨(정당) 機關紙(기관지)聯想(연상)케 하는 일이 있다. 또 어떤 이는 農村運動(농촌운동), 社會事業(사회사업) ()을 치우치게 말하는 까닭에 農業技手(농업기수)[5]講義(강의) 序論(서론)이나 社會思想家(사회사상가)宣傳(선전) 演說(연설)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또 어떤 이는 道德(도덕)이나 哲學(철학)만을 말하여 腐儒(부유)[6] 空論(공론)[7]再現(재현)하고 있다. 어떤 說敎(설교)처럼 맛 잃기 쉬운 것은 없는 것이다.

이런 說敎(설교)가 강단을 ()하는 때 사람들은 禮拜堂(예배당)에 가는 이 보다도 집에 누워 新聞(신문)읽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時代(시대)適應(적응)說敎(설교) 이것은 永遠(영원)世界(세계)에서 突入(돌입)眞理(진리)生命(생명)現代(현대)의 살(, )()에 불붙어 遍照(편조)[8]하는 慈光(자광)[9]을 말로 나타냄이니, 하나님의 사랑과 그 (), 그리스도의 十字架(십자가)와 그 復活(부활) 그 나라의 徑輪(경륜)所望(소망) 이런 것은 ()하는 世界(세계)에서 오직 혼자 ()치안는 永遠(영원)說敎問題(설교제목)이다.


[각주]

  1. 低迷(저미)하다 낮게 떠돌다, 험악해지거나 혼미해지다, 낮게 끼어 어둑하다
  2. 論及(논급) - 어떤 주제에 대하여 논하면서 그에 관련되는 다른 문제까지 논함
  3. 客格(객격) - 문장에서 명사, 대명사, 수사 등의 체언이 주어의 동작이나 작용의 대상이 됨을 나타내는 격
  4. 流轉(유전) - 이리저리 떠돎, 끊임없는 변천, 생사 인과가 서로 끊임없이 이어짐
  5. 技手(기수) - 技員(기원)의 이전 말(이전의 기술직 국가 공무원의 관직)
  6. 腐儒(부유) - 실생활에 아무런 역할도 못하는, 정신이 아주 완고하고 쓸모없는 선비나 학자를 조롱하여 이르는 말
  7. 空論(공론) - 실속이 없는 빈 논의를 함
  8. 遍照(편조) 빠짐없이 두루 비춤, 법신불의 광명이 온 세계를 비추는 일
  9. 慈光(자광) - 자애로운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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