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3일 수요일

[범용기 제3권] (139) 野花園 餘錄 - 밖엣 친구

밖엣 친구

 

111() - 이남순 여사가 전충림 사장을 통하여 나를 만찬에 초대한다. 나는 내키지 않는다.

이남순 여사로부터 다시 나에게 직접 전화해 왔다. 나는 몸이 고단해서 나갈 수 없으니 이번에는 용서하라고 대답했다.

이남순 여사는 일본 동경여자대학 출신으로 그 아버님은 일제 강점기에 광산왕의 칭호를 가진 부자였다.

그 광산 구역은 주로 이북에 있었기에 김일성 정부에 의하여 알뜰하게 국유화됐다. 그러나 자기 주택에 거주하는 것만은 당분간 허락돼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남순 여사는 남북 통일의 열심당이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랄 수는 없다. 연합교회에도 자주 나오고 원불교”(圓佛敎) 신자라기도 한다. “친이북자유주의자랄까. 어쨌든 아무데도 신념의 뿌리가 깊게 박힌 것 같지는 않다.

친좌익의 자유주의자라면 적중(適中)은 몰라도 근사(近似)는 한 것이 아닐까! 가산도 넉넉하고 자녀들도 수재 배출이다. 망평을 용서하기 바란다.

112() - 6PMKOTRA 즉 한국무역진흥관장인 김복문[1] 씨의 만찬에 초대되었다. 동석자는 이상철, 전충림, , 그리고 주인인 김복문이다. 40대의 준수한 인물이다.

우리는 프린스 호텔의 가쯔라”()라는 일본요리 식당에서 철판구이를 나누며 담화한다.

자기는 한국의 정치와는 별도로, 말하자면 직업실업인으로 자처하노라 한다. “정경분리의 원칙 위에 서 있다는 말이다. “일인독재체제안에서 정경분리가 제대로 되느냐 하는 질문에는 고충이 많다고만 대답한다.

그는 미국의 어느 일류 대학의 대학원까지 마친 일류지성인이었다.

고충이 많지만 애국적인 입장에서 무역진흥에 이바지하려는 것입니다한다.

그가 오늘, 전에 만나보지도 못한 나를 초대했다는데는 풀리잖는 의문이 남는다. 아마도 어떤 영감인가 선이라도 봐두자는 호기심에서였을 것이 아닐까? 보아하니 평범한 촌 늙은이에 지나지 않다는 판정 때문이었는지 그 후에는 일체 무소식이다.

114() - 오늘은 솜 같은 가벼운 눈이 낙화(落花)처럼 춤추며 내린다.

어제 이영일 치과에서 이빨 넷을 단번에 뽑았기에 오늘은 제대로 먹지 못한다. 아침에 밀크 한잔, 점심이 죽 한공기가 고작이었다.

누으며 앉으며 世界” 2월호를 읽는다. 이제는 내 나라 소식도 일본이나 다른 나라들 간행물에 의존하게 됐으니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각주]

  1. 김복문 씨(전 충북대 교수)1950년대 초반 미국에 유학해 경제학을 공부했고 귀국 초기에는 재무부ㆍ한국은행에서 일했다. 그는 1961년 대한무역진흥공사(코트라)에 입사하면서 삶의 목표가 바뀌었다. 1966년부터 1979년까지 그는 코트라 해외 무역관 관장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캐나다 몬트리올 등지로 옮겨다니며 장기간 해외에서 생활했다. 이 기간에 그는 정부가 정한 로마자 표기법과 외국인의 실제 발음과의 차이가 한국에 대한 바른 이해와 국익 증진에 큰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느끼고 현실성 있는 표기법을 개발하는데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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