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일 월요일

[범용기 제3권] (47) 北美留記 第一年 1974 - 골난 박정희

골난 박정희

 

후에 들은 미확인된 얘기지만, 학자회에서 내 설교가 고스란히 녹음되어 청와대에 보내졌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그 카세트를 돌려 내 강연을 다 들었단다. 그는 노발대발하여 어느 놈이 이 영감을 나가게 했느냐? 당장 잡아 오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수유리 막내 아들 관용과 한양대 김연준 총장이 정보부에 불리워 갔다. 당장 그 영감을 잡아 오라는 명령이었다 한다.

관용이더러 모셔오라고 한다. 김연준에게는 모든 비용을 대라고 했단다. 당장 캐나다에 전화하라는 것이었다. 밤중인데 지급 전화가 온다. 김연준이 정보부에서 거는 전화였다.

선생님 곧 나와 주세요. 내가 부대끼여[1] 못 견디겠습니다. …… 여기 관용이도 와 있습니다. 둘 다 남산에 와 있습니다.”

관용의 전화가 온다.

저 관용입니다. 아버님 곧 나와주세요!”

이튿날 아침에 관용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어제는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어 그렇게 여쭈었습니다만, 아버님 좋으실 대로 하세요!”

나는 여기 식구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박정희가 나오게 하려는 것은 자기 손아귀에 걺어 쥐고 자기 좋을 대로 하려는 것인데 박정희와 싸운다면서 박정희 좋은 일을 할 건 무업니까…….”

나는 관용에게 전화했다. “지금은 나갈 수 없으니 두고 보자……

그리고서도 나는 마음이 개운치가 않았다. 본국의 수난 동지들과 고난을 나누지 못하고 해외에서 편하게 지내는 것이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때문이었다.

513() - 한국은 김일성의 북경방문 이후 남침에 대한 총력안보란 이름으로 박정희 독재체제가 강요강화돼 간다고 한다.

사실, 한국을 제2의 월남화한다는 것은 김일성의 소망이었을 것이다.

유물론적 역사관이라는 결정론적 역사이해를 믿는 김일성은 그야말로 올 것이 왔다. 안 올 수는 없다. 최후의 결정타는 내 손에 있다고 호언장담할 기분도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월남과 한국은 같은 것 같으면서 같지는 않다. 그 같지 않는 데가 더 큰 문제성을 지니고 있다는 데 유의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대 월남정책을 대 한국정책과도 같지 않다. 미국은 월남에서의 실패를 한국에서 반복할 생각이 없다고 다짐한다.


[각주]

  1. 부대끼다 서로 접촉하여 부딪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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