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1일 목요일

[범용기 제4권] (39) 내 백성 내 민족 - “못자리”와 “모내기”

못자리모내기

- 苗床(묘상)移秧(이앙) -

 

한국은 분단 이전 이른바 삼천리 금수강산”, “2천만 우리 겨레때에도 비좁고 구차스러워 독수리같이 창공 만리를 날개 펴고 자유 웅비(雄飛)할 기백이 꺾여 살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三千三百(삼천삼백)만 인구가 동강이 난 38도선 이남에 몰려 옥신각신 인상식”(人相食)[1]을 벌린다.

남을 잡아먹으면 내가 살 것 같지만 바로 내 뒤에 또 나를 잡아먹을 놈이 노리고 있다. 무슨 살 길이 없을까?

그래도 좋게 보면 전화위복(轉禍爲福)[2]일 수도 있겠다.

숨 막히게 밀집된 모판[3]에 그대로 있어 갖고서는 열매 맺을 가망이 없다. 간혹 이삭이 나와도 알맹이가 없다. 영양부족이랄까? 다같이 시들시들 말라 죽는다.

그것들을 뿌리째 뽑아서 넓은 벌판에 너슨너슨 옮겨 심어야 알찬 쌀이 이삭마다 품겨 그 무게로 이삭은 까불지 못한다. 성숙한 인간이 겸손한 것과 같다.

나는 남한이 모판같다고 했다. 문제는 모내기. 일본이란 논밭에는 70만 그루가 옮겨 심어졌다. 모낼 고장으로서는 이상적이랄 수가 없다. 그래도 모판에서 말라죽는 것보다는 낫다. 낫달 뿐일까? “야요이 시대[4] 원시 일본에 이식된 그루들은 풍작이었다. 삼국시대와 고구려 멸망 후의 이주민 부대도 격양가[5]를 부르며 풍작을 즐긴다. 최근 이차대전 중에 포로 같이 끌려 일본군수공장에서 강제 노동하던 수십만 교민들도 투쟁하며 건설해 간다.

미국이나 캐나다는 원래가 이주민자신들이 세운 나라니만큼 동양족 이주민도 평등으로 자유 민주다.

어쨌든, 더 넓은 공간에로 옮겨라.

그런데 왜 본국의 군사정권에서는 남북 모두가 쇄국주의에 신나서 모판5천만을 가둬만 두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 많은 게 大家(대가)의 자랑이라더니 대가노릇하고 싶어 그러는 것일까?

저 높은 곳을 향하여도 좋지만 높은 곳은 올라갈수록 서민은 못한다.

차라리 더 넓은 곳을 향하여를 부르며 법이고 불법이고 분토같이 버리고 달려 나오라, 뛰어 넘어라. 해외 발전은 민족 생활의 비약이고 모내기 작업이다. 반드시 풍작이라고 속단할 수는 없더라도 그것을 기대할 여건은 있다.

 

[1981. 7]


[각주]

  1. 인상식(人相食) - 흉년에 너무 배가 고파 사람까리 서로 잡아먹음
  2. 전화위복(轉禍爲福) - 재앙이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으로, 좋지 않은 일이 계기가 되어 오히려 좋은 일이 생김을 이르는 말
  3. 모판 - 못자리 사이를 떼어 직사각형으로 다듬어 놓은 구역. 볍씨를 뿌려 모를 키우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곳
  4. 야요이 시대 - 일본 선사 시대의 벼농사를 기초로 한, 기원전 200~기원후 300년의 최초의 문화. 채집 경제 사회에서 생산 경제 사회로 변화한 야요이 시대의 시작은 농업을 중심으로 한 사회 조직이 구축되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청동기를 비롯한 금속기가 도구로 사용되었고, 쌀과 같은 농작물을 비축하여 얻은 부로 계급 사회가 성립되었다.
  5. 격양가(擊壤歌) - 풍년이 들어 농부가 태평한 세월을 즐기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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