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8일 월요일

[범용기 제4권] (4) 서장 - “雜草”(잡초)의 단상

雜草”(잡초)의 단상

 

수필, 수상, 단상 등등의 문학 형식은 대략 같은 부족이라 하겠다.

수필이란 것은 생각나는 대로 단숨에 내리 갈기는 것이어서 때로는 넌픽션 소설같기도 하고 수기”(手記) 같기도 하다. 일인칭으로 엮었을 때에는 자서전비슷하기도 하다. 국문학 전문가로서 시조 연구에 제일인자로 치부하는 서울대학 이병기[1] 박사의 글은 개인 일기체로 엮어졌지만, 담담하고 무사(無私)하여[2] 독자를 매혹한다. 한약재 사러 봉천 갔던 얘기, 어느 친구, 만나러 갔던 얘기, 그 친구는 그럴 수 없는 사인데도 돈량[3]이나 벌었노라고 뚱뚱보가 되어 오만스레 깔보던 얘기 담박하면서도 감초 맛이 달콤한 일기체 단장들이다.

한신대 제4회 졸업생 임인수[4] 같은 사람은 내향적이고 마음 밑바닥까지 침묵의 아비스[5]가 가라앉은 사람이었다. 원래가 시인으로 태어난 이었지만 너무 가난해서 마감에는 로 화풀이하다가 청춘에 가버린 문학의 수난자였다. 내게 대한 신의는 언제나 진실했고 지금 L.A.에 사는 김형식 씨가 첨부터 알아주는 문학친구였다. 그의 도 단장적인 그리스도 찬가로 엮어졌다.

이병기 박사의 논문도 국문학사에서 빼지 못할 명편들이겠지만, 논문의 장황함은 학문의 자랑일지 몰라도 번거롭고 어려워서 민중에게는 기가 질린다.

그런데 단상은 우선 길지가 않다. “이런 글쯤이야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한두 장() 나도 읽을 수 있어!”

 

둘째로 제목과 내용이 장마다 다르다. “마다 딴 얘기다. 그런데 그 속에 가시가 있어서 따끔, 맘을 찌른다. 생활의 권태가 진력나던 참이라, 따끔 찔리는 가시를 환영한다.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셋째로, 따끔한 바늘 끝에 미래가 찍혀 나온다.

가령 병원에서 간장 검사를 한다하자, 간장이란, 묵중해서 아파도 아프다 하질 않는다. 아픈 줄을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갈구리 달린 주사바늘을 간장에 찔러 넣어 빽 돌려서 빼낸다. 간장 조직이 갈구리에 묻어나온다. 그 작은 단편이 간장 진단에 결론을 내린다. 치료 방법도 고안된다.

단상은 짧지만 매운 데가 있고 긴 논문보다 따끔한 요소가 생동한다.

그래서 단상을 쓰기 시작했다.

 

짧은 글이라면 본국 있을 때에도 썼다. “3에 발표된 것만도 51편이나 된다.

그러나 그 내용은 지식인의 의식 구조를 찌르는 내용이 거의 전부였다. 이제는 더 내려가 “Grass Root”[6]에 뿌리를 내린다. 말하자면 잡초 문학이다. 그래서 이번 단상집은 그것만으로 독립시킬 작정이다. 나도 잡초라는 의식인이기 때문에!

 

[1981. 5. 15.]


[각주]

  1. 이병기(李秉岐, 1891~1968) - 현대의 국문학자ㆍ시조시인. 호는 가람(嘉藍). 1898년부터 고향의 사숙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당대 중국의 사상가 량치챠오[梁啓超]음빙실문집(飮氷室文集)을 읽고 신학문에 뜻을 두었다고 한다. 1910년 전주공립보통학교를 거쳐, 1913년 관립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재학중인 1912년 조선어강습원에서 주시경으로부터 조선어문법을 배웠다. 시조에 뜻을 두고 1926시조회를 발기하였고, 1928가요연구회로 개칭하여 시조 혁신을 제창하는 논문들을 발표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뤘으며, 광복 후 상경하여 군정청 편수관을 지냈다. 1946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가르쳤으며, 1951년부터 전라북도 전시연합대학 교수, 전북대학교 문리대학장을 지내다 1956년 정년퇴임하였다.
  2. 무사(無私)하다 사사로움이 없이 공정하다
  3. 돈량 - ‘돈냥’(얼마간의 돈, 또는 남이 가진 꽤 많은 양의 돈을 낮잡아 이르는 말)의 북한어
  4. 임인수(林仁洙, 1919-1967) - 해방 이후 땅에 쓴 글씨를 저술한 시인, 아동문학가. 호는 현석(玄石) 또는 구촌(九村). 경기도 김포 출신으로 1944년 조선신학교를 졸업. 해방 이후 동시, 동화, 아동소설 등 아동문학작품 외에 시도 발표하면서 주로 잡지의 편집일을 보았다.
  5. 어비스(abyss) - 심해, 심연(深淵), 땅의 깊이 갈라진 금, 한없이 깊은 것, 헤아릴 수 없는 것, 밑바닥
  6. Grass Roots - 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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