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2일 금요일

[범용기 제4권] (49) 군인 정치 - 칼과 기생충

칼과 기생충

 

살이 많이 빠졌지만 그래도 많이 남아 있다. 뼈도 그런대로 뻗치고 있다. 버스정류장까지는 다섯 블럭걸어야 하는데 발이 가볍고 다리가 재서 뭔가 젊음을 숨 쉬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때 심심하면 혼자서 자기 살을 만져 본다. 이게 어떻게 80년이나 붙어 있을까? 내가 마감 숨을 내쉰다면 그 이튿날로 썩을 텐데! “생명이라는 보이지 않는 무엇이 있어서 침범하는 죽음과 싸우며 안으로 질서와 안전을 보존하기 때문에 썩지 않는 것이겠지!

이 멎으면 죽는다는 현상 때문에 옛 사람, 특히 히브리 사람들은 이 곧 생명이라고 했다. 그러나 생명이 있으니까 숨을 쉴 수 있는 것이지, 숨 쉬기 때문에 생명이 생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우리 몸에서 생명이 떠나면 그 순간 우리 살은 어쩔 수 없이 썩는다. 뼈는 단단해서 덜 썩는다 해도 몇백 년 후에는 한줌 흙과 다를 게 없다. 그러고 보면 생명이 내 몸 속에 유숙하고 있다는 사실 그대로가 내가 살았다는 표적인데, 이 생명에 대한 인간들의 태도는 너무 무엄하다.

일본 사람들은 본래부터 무력을 좋아했다. 그래서 걸핏하면 칼을 뺀다. “무사란 계급에서는 칼을 두 자루 양쪽 겨드랑이에 꽂고 어깨를 재며 다닌다. 칼이 잘 드나 시험한다고 공연히 서민들 목을 잘라본다. 그들은 그것을 키리스데”(거저 베어버렸다)라고 한다. 서민들의 생명무사칼 맛” “시험용밖에 안된다. 너무 횡포하면 반항이 생긴다. 내란이 일어난다. 그래서 무력에도 ”()가 있어야 하겠대서 소위 무사도가 생겼다. 일본 무사도에서는 의리가 첫째인 것 같다. “상관에 대한 의리성주에 대한 충성으로 발전했고 명치유신때에는 그것이 천황에게 총집결 되었다. 힘을 겨뤄 졌다 해도 의리를 지켜 당당하다. 그리고 스스로 배를 갈라 그 기백을 과시한다. 우리는 무사다! “”()에 죽어 다시 산다고 의연하다. 그런데 제2차 대전 때 그들은 맥아더에게 무조건 항복했다. 그러나 앙심은 비수같이 푸르렀다. “강한 자에게는 그 둥거리에 감겨라.” 그래서 칡넝쿨처럼 미국에 감겨 얼싸안고 번영했다. 그래서 일본이란 나라 생명은 다시 강대국측에 끼었다.

이제 한 숨 쉬었으니 이제부터 재군비. 경제 대국, 정치 대국, 이제는 군사 대국이다. 극동에서는 미국 대신에 일본이 싸워준다. 그래서 무사의 칼에는 녹이 안슨다. 그까짓 약한 놈들은 키리스데 고멩이다.

모르긴 하지만, 일본 군벌에서는 원산에 상륙하여 39도선에서 남한군과 합세하여 북한을 밀고 민주를 되찾을 궁리를 할른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약자의 생명은 초개같다고 할까! 그런데 박정희ㆍ전두환은 이런 침략일본의 앞잡이 충복이 됐다. 그러니까 그들은 우리 몸속의 회충이고 십이지장충이고 촌백충[1]이다. 우리가 살려면 무엇보다도 구충약이 시급히 요청된다. 그런데 이 국민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들이 너무 오래 득세해서 이제는 위와 장벽에 후끄”(갈고리 주둥이)를 깊이 걸고 늘어져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그것부터 몰아내야 한다. 이승만 박사는 만일 일본이 재침략 한다면 나는 이북과 합하여 일본과 싸우겠다고 끊어 말했다고 들었다. 그랬다면 그는 역시 거물이고 일본 끄나풀, “쫄개[2]는 아니었다.

일본 사람들 중에도 정의에 살려는 소수 양심적 지성인이 있다. 그들은 우리의 친구요 동지다. 우리는 그들과 제휴해야 한다. 그들을 통하여 일본이 계몽되어야 하겠다. 그래서 칼보다 의를 앞세우는 일본을 만들어줘야 하겠다.


[각주]

  1. 촌백충(寸白蟲) - ‘조충(條蟲)’의 이전 말.
  2. 쫄개 - ‘졸개’(남의 부하로 따르면서 심부름을 하는 사람이나 졸병을 얕잡아 이르는 말)의 방언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