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덤불 속에서
하늘의 생명을 배태한 한 씨앗이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다. 앳된 자엽(子葉)[1]이 굳은 외피(外皮)를 뚫고 머리를 내밀었다.
어딘가 빛이 있기는 한데 흑막이 빛 보다 짙으다. 어디선가 바람이 미동(微動)하는데 천식환자같이 헐떡여야 한다.
“왜 태어났는가?”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고! 삶 자체가 괴로움이다. 그늘에서 자라는 “허약”이 모든 것을 “허약”의 항목 속에 통산한다. 약하니 하찮은 벌레도 업신여긴다.
가시덤불은 곡식이 아니라 가시 돋친 잡목이다. 힘센 맹수형이랄까. 가시가 싫어서 나무꾼도 좀처럼 손대지 않는다. 박토[2]에서 자라지만 옥토에서는 더 잘 자란다. 그래서 “악화”의 밀림을 이룬다.
농부에게는 곡식 기를 의무가 있다. 이 억울한 수난자 구출을 위한 대책이 있어야 하겠다.
“불을 지를까?”
잘 탈 것이다. 그러나 곡식도 함께 탈 것이다. 그것은 무의미하다.
“덤불을 휘여 묶어 통풍부터 되게 할까?” 안하기보다는 났겠다. 그러나 다른 가지들이 더 많이 치밀어 나올 것이다.
“낫으로 조심조심 베어 버리자!”
그러나 새 싹이 더 많이 힘차게 돋아날 것이다.
“뿌리가 문제다!”
그러나 작업의 순서는 있다. 우선 베어버려야 한다. 그리하면 찌르는 가시는 없어진다. 다음에는 밖에서부터 살금살금 뿌리를 파헤친다. 한 가닥 한 가닥 파내고 끊어낸다. 그리고 그 고생에 시달린 약한 곡식 싹들을 가꾼다. 먹을 것, 마실 것, 알맞은 햇빛, 그리고 벌레잡기 – 그래서 갱신의 과정을 진행시킨다.
생명은 안에서 밖으로 생성 발전한다. 환경이란 스스로 발전하는 생명의 노작을 방해하지만 않으면 된다. 생명 발전의 “코오스”에 보탬이 되도록 성실하게 도와주면 더욱 더 좋겠다.
모든 것은 곡식본위라야 한다. 곡식은 “인간”이다.
교회라는 이름의 “농부”에게는 할 일이 많다.
[1976. 2. 3]
[각주]
- 자엽(子葉) - 씨앗에서 움이 트면서 맨 처음에 나오는 잎. 보통의 잎과 형태가 다르고, 양분을 저장하고 있는 것이 있다.
- 박토(薄土) - 매우 메마르고 거친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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