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7일 수요일

[범용기 제4권] (91) 野花園餘錄(야화원여록) - 中源(중원)

中源(중원)

 

중국은 동양의 대국임에 틀림없다. 진시황의 만리장성은 나라 둘레의 크기를 과시한다. 그거나 그것은 변두리, 실질적인 심장부는 황하유역이었다. 따라서 산동반도[1]는 중국문화의 무역항이었다.

지금 고고학자들의 출토품에서 입증된 대로 중국문화는 [2]나라의 유허에서 다분히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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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중원의 토착 한족 이외의 나라들을 미개한 야만으로 호칭했다. 산동 반도에서 동방에 있는 민족은 동쪽 뙤놈[3] 東夷”(동이)[4]이라 했다. 당초에는 자기들 족속과 구별하기 위해서였고 멸시하는 뜻에서가 아니었다 한다. 그 밖에 서융(西戎)[5], 남만(南蠻)[6], 북적(北狄)[7] 등등 東西南北(동서남북)이 모두 뙤놈으로 포위된 나라가 중원이었다. 요동반도[8]에서부터 만주, 연해주 등은 고구려동이의 땅이었다. 일본 사람들은 동이가 일본을 호칭한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일본도 포함된 의미에서였겠지만 일본은 한무제말기까지는 중국으로부터 나라라는 호칭을 받지 못한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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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시조 성탕(成湯)[9]동이사람이라고 했다. 한말 역사학자 신채호[10] 선생은 우리 부여족이 산동 반도를 거쳐 중국에 발전한 거라고 했다.

어쨌든, 진시황의 진왕조와 한고조 유방한왕조가 망하고 나서 516국 시대[11]에 이르러서는 중국이 뙤놈들 천하가 됐다. 그만큼 한민족게토[12]가 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 ‘’, ‘’, ‘등의 세계 왕국이 형성됐다. ‘게토가 깨어져야 세계에로 넓어진다.

우리나라가 스스로 세계왕국이 되기에는 판국이 너무 좁고 작다. 특히 고구려 멸망에서 결정타를 입었다. 그러나 문화에 있어서는 세계적일 수가 있다. ‘문화가 부여족의 것이었다고 가정한다면 그리고 일본 고대문화가 한국문화의 이식이었다면 문화에는 입국금지가 듣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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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국은 공산화했다. 그러나 그것도 중국적인 문화를 숨쉬고 중국적인 음식을 먹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중국인체질을 조정하게 될 것이 아닐까?

막연하지만 망대의 시야는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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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는 두 진영으로 대립돼 있다. 핵무기 경쟁이 핵전쟁으로 탈선하면은 일순간에 전인류가 시체의 먼지로 변모할 수도 있다 한다. 3의 결정적인 투표자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소수민족이고 민중이다. 그들이 일어나 메시야 왕국을 세운다면 모두가 살 길이 열릴 것이다. 이 돌아선 행렬에서 한국이 선두일 수도 있다고 자부한다. 다만 우리 자신들의 이에 대한 긍지와 의식화가 문제일 뿐이다.


[각주]

  1. 산동반도(山東半島) - 중국 산둥성 동쪽에 있는 반도이다. 황해에 접해 있고, 바다쪽으론 한반도와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북쪽은 보하이 해의 라이저우 만에 접해 있다. 산둥 반도는 산둥성을 이룬다.
  2. (, 기원전 1600년경 ~ 기원전 1046년경)은 역사적으로 실제 했다고 여기는 최초 중국 왕조다. 반경(盤庚)이 마지막으로 옮긴 수도가 은()이기 때문에 은나라로 부르기도 한다.
  3. 뙤놈 - ‘되놈’(중국인을 낮추어 이르는 말)의 비표준어이지만, 이 글에서 장공은 중국 이외의 민족을 뙤놈이라고 표현하는 듯 하다.
  4. 동이(東夷) - 사이(四夷)의 하나. 옛날에 중국 사람이 그들의 동쪽에 있는 한국, 일본, 만주 등의 민족을 업신여겨 이르던 말이다.
  5. 서융(西戎) - 중국에서, 한인이 서쪽 변방의 이민족을 이르던 말
  6. 남만(南蠻) - 남쪽의 오랑캐라는 뜻으로, 예전에, 중국에서 자기 나라의 남쪽 지방에 사는 민족을 얕잡아 이르던 말
  7. 북적(北狄) - 중국 사람이 그 북쪽에 사는 족속들을 멸시하여 이르던 말.
  8. 요동반도(遼東半島) - 요동(Liáodōng, 랴오둥)반도는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遼寧省) 남부의 반도이다. 황해(黃海)의 북쪽에 있으며, 서쪽으로 보하이만(渤海灣)의 일부분인 랴오둥만(遼東灣), 동쪽으로 서한만(西韓灣), 남쪽으로는 바다를 건너 산둥반도(山東半島)가 자리하고 있다. 옛부터 한민족들이 지배하고 있던 중국의 지역이다.
  9. 성탕(成湯) - (, 기원전 1600년경)은 상나라(=은나라)의 건국자로, 이름은 리()이다. 천을(天乙), 대을(大乙), 태을(太乙), 성탕(成湯), 성당(成唐)이라고도 한다. ()나라의 마지막 왕 걸을 추방해 하 왕조를 멸망시켰다. 하나라의 마지막 왕 걸은 포학한 정치를 해 인심은 하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하의 신하인 탕은 명신 이윤의 보좌를 받아 걸을 공격해 멸망시켰다.
  10. 신채호(申采浩, 1880~1936) - 본관은 고령(高靈). 호는 일편단생(一片丹生단생(丹生) 혹은 단재(丹齋). 필명은 금협산인(錦頰山人무애생(無涯生열혈생(熱血生한놈·검심(劍心적심(赤心연시몽인(燕市夢人), 가명은 유맹원(劉孟源). 충청남도 대덕군 산내에서 출생하였고, 충청북도 청원에서 성장하였다. 신숙주(申叔舟)의 후예로 아버지는 신광식(申光植)이다. 25세 때에는 신규식·신백우(申伯雨) 등과 함께 향리 부근에다 산동학원(山東學院)을 설립, 신교육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18세 때에는 할아버지의 소개로 전 학부대신 신기선(申箕善)의 사저에 드나들며 장서를 섭렵해 그의 총애를 받았다. 신기선의 천거로 성균관에 입학, 관장 이종원(李鍾元)의 총애를 받았다. 26세 되던 19052월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갈 뜻을 버리고 장지연(張志淵)의 초청으로 황성신문(皇城新聞)의 기자가 되어 논설을 쓰며 크게 활약하였다. 1910년 봄에는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五山學校)와 안동현(安東縣)을 거쳐 산둥반도[山東半島]의 칭다오[靑島]에 도착, 신민회 동지들과 함께 청도회의에 참석하고 독립운동을 위해,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윤세복(尹世復이동휘·이갑 등과 광복회(光復會)를 조직하고 부회장으로 활약하였다. 1919년 북경에서 대한독립청년단을 조직, 단장이 되었다. 그 해 4월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참여, 임시의정원 의원이 되었으며, 한성정부(漢城政府)에서는 평정관(評定官)에 선임되기도 하였다. 그 해 7월 전원위원회(全院委員會) 위원장 겸 의정원 의원에 선출되었으나, 이승만(李承晩)의 노선에 반대하여 이를 사임하였다. 1922년 의열단장(義烈團長) 김원봉(金元鳳)의 초청을 받아 상해에 가서, 이듬해 초에 조선혁명선언(朝鮮革命宣言)으로 불리는 의열단선언을 집필, 발표하였다. 이 선언에서 신채호는 폭력에 의한 민중 직접 혁명을 주장하였다. 19284월 무정부주의동방연맹대회에 참석해 활동하는 등 점점 행동 투쟁에 나섰던 신채호는, 5월 대만에서 외국위체위조사건(外國爲替僞造事件)의 연루자로 체포되어 대련(大連)으로 이송, 19305월 대련지방법원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여순감옥(旅順監獄)으로 이감, 복역하던 중 뇌일혈로 순국하였다.
  11. 오호 십육국 시대(五胡十六國時代 : 304~439)는 중국의 위촉오 삼국을 통일한 서진(西晉)이 멸망한 후, 5개의 비한족을 비롯한 16개의 국가가 회수(淮水) 북부에 여러 나라를 세우며 난립하던 시대를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전조(前趙 : 304~329)가 건국된 304년부터 북위(北魏 : 386~534)가 화북을 통일한 439년까지를 가리키는 것이 보통이다.
  12. 게토(ghetto)는 소수 인종이나 소수 민족, 또는 소수 종교집단이 거주하는 도시 안의 한 구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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