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일 수요일

[범용기 제5권] (123) 요꼬하마에 - 除夜(제야) 讀詩(독시)

[범용기 제5] (123) 요꼬하마에 - 除夜(제야) 讀詩(독시)

 

1982년도 오늘로 퇴장한다. 지루하게 걸려있던 역서장도 다 떨어져 나갔다. 늙은 아내는 옆방에서 잠들고 나 혼자 제 그림자를 깔고 앉아 밤을 샌다.

잠이 천리만리, 묵은 해 따라 달아났다. “당시집을 읽는다. 맨 처음 눈에 뜨이는 것이 금삼(芩參, 715-770)除夜詩(제야시).

 

東去長安萬里餘 故人那惜一行書

玉關西望腸堪斷 況復明朝是歲除

 

동으로 동으로

장안은 만리

친구여,

한 장 편지 아끼지 마소!

 

옥관지나

서역

애끗는

슬픔인데,

 

내일 아침

이해도

除日이라네. (長空譯)

 

[] - 芩參(금삼)南陽(남양), 지금의 河南省河陽市(하남성하양시) 사람, 출생지는 강능”, 귀족 출신, 744 AD進士(진사), 西北地方(서북지방) 節慶判官(절경판관), 765 AD西州省(서주성) 壽州刺使(수주자사)가 되어 任期(임기) 끝나고 귀경 도중에 여관에서 客死(객사)했다. 그에게는 시가 많다.

그의 시 가운데는 이런 시도 있다. 못 본 체 지내기는 너무 절실하다.

 

走馬西來欲到天 辭家見月兩回圖

今夜不如何處宿 平沙萬里絶人烟

 

하늘 다은

서쪽 길

말 타고 달렸네.

 

집 떠나 달 보니

두 번 다시 둥글었네.

 

오늘 밤은

-

어디서 잘건가?

 

펼쳐진 萬里사막

인가라곤 없는데!

 

寒雨連江夜入員 平月送客楚山孤

洛陽親友如相問 一片泳心在玉壺

 

강물에 잇다은

차가운 비 맞으며

밤 늦게신

에 들었네.

이른 아침

벗 보내니

楚山만 외롭구려.

洛陽 친구들

내 형편

묻거들랑,

玉壺()에 담긴 얼음

맑더라 일러주오!

 

[] 南陽(남양)에서 洛陽(낙양), 즉 그때 서울로 돌아가는 옛 친구를 보내며 지은 석별시.

東江(동강)은 빗발이 강물에 잇다아 강물과 빗발이 하나로 어울린 광경.

 

隴西行(농서행)

 

誓掃匈奴不顧身 五千貂錦喪胡塵

可憐無定河骸骨 猶是春閨夢愛人

 

맹세코 흉노를

소탕한다고

내 몸 돌볼

생각도 없었는데

五千의 장정을

호지땅에 잃었네.

 

슬프다!

해골만 딩구는

無定江 언저리

그들 모두

봄의 규수들

꿈에도 못 잊는

애인일텐데!

 

[] “농서행은 노래 이름.

貂錦”(초금)은 모피와 비단옷 몽고 사막의 밤 추위에 견디는 군복.

無定江(무정강)은 협서성 동북부에 있는 강. 내몽고에서 발원하여 楡林(유림) 서쪽 綏德(수덕) 동쪽편을 흘러 황하에 합류한다.

농서서역에의 통로로서 감숙성 서부라고 한다. 作者(작자) 陳陶(진도)846-860 大中年間(대중년간)()西山(서산)에 피해, 仙人(선인)이 됐다는, 平淡無塵(평담무진)晩唐(만당) 詩人(시인)이란다. 생년월일은 모른다.

 

王維(왕유)

 

桂魄初生秋露微 輕羅已薄未更衣

銀爭夜允殷勤弄 心怯空房不忍歸

 

초생 달 떠올라

찬 이슬 촉촉한데

겹옷으로 갈아 입을

생각도 없이

밤새가며 은쟁

타는 것은-

빈방에 혼자 못들

겁심 때문이라오.

 

銀爭”(은쟁)은 은을 박아 장식한 거문고 종류의 악기. “殷勤”(은근)은 정성드리는 마음씨. “怯心”(겁심)은 겁에 질리는 심경.

作者(작자) 王維(왕유)699-759 AD 사람이라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15세에 이미 詩名(시명)이 높았고 18세에 大成(대성)한 천재 시인이다.

 

夜上受降樓聞笛

回落峰前沙似雪

受降城外月如霜

不如何處吹芦管

一夜征人盡望鄕

 

回落峯(회락봉) 앞 모래는

눈이랄까!

수항성 달빛은

서리 같구려!

풀피리 소리는

어디서 오는고!

싸움터 사나이들

고향 그려

밤 샐 텐데!

 

[] 作者(작자) 李益(이익)748-827 AD의 사람.

()君虞(군우)란다. 감숙성 무위현 사람.

中唐(중당)詩人(시인) 李賀(이하)와 동족이며 풍류와 文才(문재)로 이름이 높아 진사, 집현전 학사, 待御使(대어사) 禮部尙書(예부상서)까지 한 벼슬아치. ‘’()()하여 오만 불순하고 질투가 심했단다.

 

月夜(월야)

 

更深月色半人家 北斗閑干南斗斜

今夜便知春氣暖 蟲聲新透緣窓紗

 

깊은 밤 달빛

집의 반만 비추네.

北斗七星(북두칠성) 기울고

南斗(남두)가 비꼈네

오늘 밤 유난스레

봄기운 따스해,

碧紗窓(벽사창) 뚫고

벌레소리 스며드네!

 

作者(작자) 劉方平(유방평 710-?)河南(하남) 사람으로 절세의 미남자였단다. 20세에 文名(문명)山水畵(산수화)로 이름이 드높았다. 벼슬에는 초연하여 평생을 야인으로 지냈다.

 

西城(서성)에로 赴任(부임)길에

入京使(입경사)를 만나서

 

芩參(금참)

 

故園東望路漫漫 雙袖龍鍾淚不乾

馬上相逢無紙筆 遇君傳語報平安

 

동쪽 고향 길,

보기도 아득하오.

눈물 안 말라

두 소매 젖었소.

 

말 탄대로 만났으니,

조이 붓 없구려.

평안 하더라고

말이나 전해주오.

 

그는 여전히 邊境(변경)詩化(시화)한다.

 

隱隱飛矯隔夜烟 石磯西畔問漁船

挑花盡日隋流水 洞在淸溪何處過

 

아지랑이 저 켠에

구름다리 떠 있네.

돌짝 밭 서쪽 냇가,

고기 배에 묻노라.

복사꽃 진종일

시내따라 흐르니,

어느 골에

무릉도원 있나요?

 

[] 作者(작자) 張旭(장욱)675-750(?) A.D.의 사람으로서 소주(蘇州) 吳人(오인)이다. 詩想(시상)이 무궁무진하고 글씨는 草書(초서)名人(명인)이었다. 술 먹고서 고함질러 미친 사람 같았단다.

 

張祐(장우)

 

金陵津渡小山樓 一宿行人自可愁

潮落夜江斜月裏 兩三星火是瓜州

 

金陵(금릉) 나루터

小山樓(소산루)에 하루밤

쓸쓸도 하이

썰물 밀리고

살도 기운데

별이냥 반짝이는

강건너 가로등 -

저것이 과주(瓜州)라네

 

[] 作者河北省(하북성) 淸河(청하) 사람. 金陵(금릉)은 남경. 瓜州(파주)는 장강 북쪽 강소성 양주(楊州). ()은 양자강. 북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心情(심정)

 

涼州詞(양주사)

 

葡萄美酒夜光杯 欲飮琵琶馬上催

醉臥沙場君莫笑 古來征戰幾人回

 

향긋한 포도주

야광배에 가득부어

마시고 떠나려니

말 윗 비파소리

어서 타라 성화네.

 

나 이제 취객 되어

모래밭에 누웠다고

그대여, 웃지말게.,

예부터 출정군인

돌아온 이 몇이던고!

 

[] 作者(작자) 왕한은 산서성 태원(太原) 사람.

710 AD에 진사, 直言極諫科(직언극간과)에 있다가 竝州長史駕部員外郞(병주장사가부원외랑) 등 벼슬도 했다. 그러나 성질이 호탕하여 고관 귀족들도 마구해 버리고 조금도 쭈볏하지 않았다. 술 먹고 사냥하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였다.

涼州”(양주)는 감숙성 무위현에 있는 서북 국경수비의 요충지. 서하(西河)절도사가 주재하는 고장. “서장은 포도의 명산지. “비파서장유목민이 말 위에 앉아 연주하는 현악기.

 

後庭花(후정화)

 

煙籠寒水月籠沙

夜泊泰 近酒家

商女不知亡國恨

隔江 唱後庭花

 

밤 안개 찬 물에 끼고

달빛은 모래에 서렸다

진회에서 하루밤

술집 옆에 머문다

강건너 妓女(기녀)

후정화에 흥겨웠네.

그것이 나라

亡國(망국)간줄 모르고!

 

[] 作者(작자) 杜牧(두목) (803-852 AD)은 재상가문 출신으로 ()牧之(목지)로 알려졌다. 진사, 감찰어사, 호주진사, 중서사인 등 벼슬아치였으나 나이 50에 영서했다.

용모가 미려하고 성질이 강직하여 국가대사를 논하는 마당에서 변론이 절실하고 호방하여 맞서기 어려운 위인이었다. 그의 : 阿房宮賤(아방궁천)憂世(우세)[1]名文(명문)으로 전해진다(唐才子傳).

後庭花”(후정화)南朝(남조) 최후의 왕조인 ”()宣帝(선제, 재위 582-589 AD)王樹後庭花”(왕수후정화)란 제목으로 손수 작자, 작곡한 노래다. 그는 일락[2]에 빠져 ()나라에 망했다.

 

長空”(장공)16세 소년 때, 회령읍에 있으면서 한국 명필중의 한분이신 白松(백송) 池昌翰(지창한)[3] 선생의 휘호하시는 곳에 가뵌 일이 있다. 그는 합방 전에 무산군수로 계시면서 백두산 정계비 세울 때 한국측 대표 중 한 분으로 활약하기도 하셨다. 내 백부님과 선친과도 깊은 친교를 갖고 계셨다.

그 어른이 위에 적은 商女不知亡國恨……구절은 그 자신의 ’()을 대변한 구절이래서 즐겨 많은 후진들에게 남기신 줄 안다.

 

朝辭白帝彩雲間 千里江陵一日還

兩岸猿聲啼不盡 輕丹已過萬重山

 

아침 일찍 떠났다.

채색구름 자욱한

백제성을 떠났다.

 

천리길 강릉을

하루에 돌아왔다.

 

좌우 언덕에는

원숭이 소리-

 

가벼운 배, 벌써

만겹 산을 지났다.

 

[] “강릉은 호북성

百帝城(백제성)四川省(사천성) 奉節縣(봉절현)에 있는, 漢末(한말)公孫述(공손술)이 세운 성이란다. 여기서 강릉까지는 300km, 1200華里下流(하류), 李白(이백)安史(안사)()永王璘軍(영왕린군)에 가담했었기 때문에 流配(유배)의 선고를 받고 三崍(삼래), 坐山(좌산)까지 갔다가 도중에서 무죄 사면의 통고를 받고 기분이 경쾌하여 다시 江陵(강릉)에로 돌아가는 길에 지은 시. 경쾌한 기분이 가벼운 배와 함께 흐른다.

 

李白(이백)

 

故人西辭黃鶴樓 烟花之月下楊州

孤帆遠影碧空盡 唯見長江天際流

 

황학루 하직하고

친구는 갔네.

아지랑이 三月(삼월)

楊州(양주)로 갔네.

 

외로운 돋배

멀어지는 그림자

하늘에 녹아들고

지금은 하늘 가

長江(장강)만 보이네!

 

李白(이백)黃鶴樓(황학루)에서 孟浩然(맹호연)[4]廣陵(광릉)에 보내면서 지은 시.

황학루湖北省(호북성) 武漢市(무한시) 武昌(무창) 언덕 위에 서있는 樓閣(누각). “楊州”(양주)는 강소성 양주시.

作者(작자) 李白(이백)靑蓮居士(청연거사)’()를 갖고 있다. 出生地(출생지)甘肅省(감숙성) 千山嶺(천산령)이라니까, 四城出生(사성출생)이다. 少時(소시)에는 ’()에서 자랐다.

15세에 劍術(검술)을 닦고 來客(내객)들과 섞여 殺傷犯行(살상범행)도 저질렀다고 한다. 20세에 禮部尙書(예부상서)가 되었었으나, 오래잖아 珉山(민산)에 숨어 살았다. 25세 때에 일단 고향에 돌아가 옛 가정에서 아들 딸 낳고 살았었다. 다시 벼슬아치로 등용되기도 했으나 竹溪六逸中(죽계육일중)[5]한 사람이기도 하다.

中國時文界(중국시문계)의 제일인자. 술에서 시를 마시고 시로 술에 취한다. 俗世(속세) 영광을 비웃으며 風月(풍월)을 읊었다. 그의 삶은 시의 噴水(분수)였다. 그는 시의 화신(化身)이었다.

 

辱隱者不過

賣島

 

松下間童子 言師採樂去

只在比山中 雲深不知處

 

일부러 隱師(은사)님 뵈러 갔다가 못 만나고 지은 시.

 

소나무 밑에서

어린이에게 물었다.

선생님 어디 계시냐?”

약초 캐러 가셨어요.”

정령, 이 산 속에

계시긴 하렸마는,

구름이 깊어

그 고장 알길 없네!

 

[] ‘어린이隱師(은사)님의 使童(사동)

作者(작자) 賣島(매도, 779~843 AD)()浪仙(낭선) 范陽(범양) 사람이다.

과거에는 언제나 낙제생. 주머니에 돈 한 푼 없이 천대고생. 시만으로 살았다. 그의 시는 難産(난산)이었다. 3년을 닦고 닦아 시 두 편 얻으면 그 앞에 향 피우고 절하고 눈물 흘렸다고 한다.

 

長空(장공)은 여섯 살 때, ()를 나불나불 외었다. 선친께서 벽장 문에 써 붙였기에 안 볼 수도 없고 안 읽을 수 없었다. 先親(선친) 따라 약초 캐러 다니기도 했었기에 인연이 깊다.

이제는 1982除夜(제야)도 다 갔다. () 읽기도 고단하다. 그래도 번역은 내 솜씨라, 졸작이라도 버리기에는 아까워서 原詩(원시) 밑에 적어둔다. 수필집에 끼어넣을 작정이다. 한자(漢字)가 질색인 인쇄소에서는 골치 아프겠지만 넓은 마음으로 받아주기 바란다. ()

 

[각주]

  1. 우세(憂世) - 세상 일을 근심함
  2. 일락(逸樂) - 편안하게 놀며 즐김
  3. 지창한(池昌翰, 1851~1921) - 본관은 충주(忠州). 호는 백송(白松). 함경북도 무산에서 살았던 사실만 전해져 있을 뿐 그의 출신 배경이나 생애 등은 알려져 있지 않다. 수묵문인화풍(水墨文人畫風)으로 물고기와 게 그림을 잘 그렸다. 게 가운데에서도 밤게를 특히 잘 그려 이 분야에서 이름을 얻었다. 글씨는 하소기(何紹基, 17991873, 중국 淸代의 학자. 서도가.)()를 잘 썼다. 유작으로 율해도(栗蟹圖)·해도(蟹圖)(개인 소장), 노위도(鷺葦圖)(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등이 있다.
  4. 맹호연(孟浩然, 689~740)은 중국 당나라의 시인이다. 이름은 호이며, 자는 호연이며 호()는 녹문거사(鹿門居士)이다. 양양(襄陽) 사람으로 절개와 의리를 존중하였다. 한때 녹문산(鹿門山)에 숨어 살면서 시 짓는 일을 매우 즐겼다. 40세 때 장안(지금의 시안)에 나가 시로써 이름을 날리고, 왕유ㆍ장구령 등과 사귀었다. 그의 시는 왕 유의 시풍과 비슷하며, 도연명의 영향을 받아 5언시에 뛰어났다. 격조 높은 시로 산수의 아름다움을 읊어 왕유와 함께 산수 시인의 대표자로 불린다. 맹양양(孟襄陽)으로도 불리며 저서에 맹호연집’ 4권이 있다.
  5. 竹溪六逸(죽계육일) - 중국 당() 나라 천보(天寶) 연간에 태안부(泰安府) 조래산(徂徠山) 아래 죽계(竹溪)에 모여 날마다 술과 노래를 즐기며 세속을 초일(超逸)한 여섯 명의 문인. 이백(李白)ㆍ공소보(孔巢父)ㆍ한준(韓準)ㆍ배정(裵政)ㆍ장숙명(張叔明)ㆍ도면(陶沔)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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