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14일 금요일

[십자군 제1권 제1호](1937년 5월) - 낙수(1) - 사랑하는 獨子를 - 편집자

사랑하는 獨子

- 편집자


 

(二十二十四)네 아들, 네 사랑하는 獨子(독자)를 번()로 들이라

宗敎發達史(종교발달사)見地(견지)로 볼때에는 子女(자녀)를 불속에 집어넣어 ()貢養(공양)하는 原始宗敎(원시종교)(?)을 고치기 ()敎訓(교훈)으로도 볼수 있을 것이나 聖經(성경)에는 아부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기 ()하야 하나님께서 이 무서운 命令(명령)을 나리섰다고 하였다. 그러나 아부라함에게 이 소름끼치는 試驗(시험)하는 하나님 自身(자신)心情(심정)은 어떠하섰을까? 그의 心情(심정)에는 벌서부터 自己(자기)의 외아들 그리스도를 十字架上(십자가상)血祭(혈제)로 삼으실 徑輪(경륜)이 계섰으며 그 徑輪(경륜)의 그림자를 아부라함에게 보여주신 것임이 分明(분명)하다. 이는 아부라함에게 ()試驗(시험)이었음과 同時(동시)十字架(십자가)豫言(예언)이였다. 人間(인간)()로 말미암아 받으시는 하나님의 苦難(고난)을 말슴한 것이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罪人(죄인)되었을 때에 그의 獨生子(독생자)代死(대사)에 이르게하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섰다. ()



아 이 사랑에 ()感激(감격)이 없다면 어찌할가? 우리는 木石(목석)이랄가, 悖逆兒(패역아)랄가.

나는 貴人(귀인)이오 富豪(부호)某氏(모씨)가 그의 사랑하는 獨子(독자)中國與地(중국여지) 宣敎師(선교사)로 보내던 때의 心情(심정)을 생각한다. 橫行(횡행)하는 揚子江(양자강) 上流(상류)? 모리아山上(산상)의 번祭壇(제단)이나 다름이 무엇이랴!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을 빌며 行裝(행장)을 묶어주는 것이였다. 우리에게 이 믿음이 있는가? 여간 돈푼을 傳道費(전도비)에 받히는 것도 정성스럽게 못하는 우리가 아닌가? 사랑하는 獨子(독자)! (), 아바지의 사랑이, 우리에게 感激(감격)하야 우리도 또한 당신과 兄弟(형제)()하야 목숨이라도 받히는 믿음의 祝福(축복)參與(참여)하게 하옵소서(요일 十六).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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